뱀파이어와 좀비는 할리우드의 단골 소재다. 뱀파이어의 순애보를 다룬 ‘트와일라잇’ 시리즈로도 모자라 바람둥이 뱀파이어와 마녀의 로맨스를 다룬 ‘다크 쉐도우’까지 나왔다. 좀비도 만만치 않다. 인적 드문 교외에 갇힌 7명이 좀비에 맞선다는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감독 로메로) 이후 좀비 관련 영상물은 계속 쏟아진다.

좀비로 뒤덮인 세상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사투를 그린 드라마 ‘워킹 데드’는 인기에 힘입어 시리즈 3까지 만들어졌다. 단순한 호기심의 일환일까, 죽지 않는 존재에 대한 막연한 선망 탓일까. 멕시코 몬테레이 신터멕스에선 ‘몬테레이 좀비 축제’가 열리고, 지난해 9월엔 좀비가 어디서 많이 검색되고 정보화되는지 나타낸 ‘좀비 지도’(옥스퍼드대 인터넷 연구소)도 작성됐다.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걸까. 미국과 캐나다가 좀비 때문에 난리란 소식이다. 인육을 먹거나 자해 후 자신의 내장을 꺼내 던지는 등 엽기적인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좀비의 공격으로 인류 종말이 가까워졌다는 ‘좀비 아포칼립스(좀비 묵시록)’란 말이 떠돈다는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 창궐’ 내지 ‘좀비 대재앙’이란 단어까지 등장하자 미 연방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나서서 “CDC가 아는 한 좀비 바이러스는 없다”고 발표했다는 마당이다.

끔찍한 행동의 원인으론 ‘배스 솔트(bath salt)’ 혹은 악마의 숨결로 불리는 스코폴라민이란 신종 마약이 거론된다. 배스 솔트엔 미 의회에서 금지시킨 환각물질 MDPV와 메페드론이 모두 들었고, 보라체로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스코폴라민 역시 인간을 ‘좀비’ 상태로 만든다는 것이다.

마약 때문이든 아니든 기괴한 일이 벌어지고 이를 좀비 대재앙으로 몰아가는 데 대한 해석은 구구하다. 바이오 테러에 대한 미국인의 공포를 드러낸다, 경제 불황에 따른 미국 사회의 불안한 정서를 반영한다, 2012년 지구종말론 탓이다 등.

‘좀비는 현존하는 재난을 말한다. 좀비 스토리는 사람들이 실제 일어나는 위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대한 얘기’라는 풀이도 있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흔들리는 상태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꼭 사람을 먹겠다고 덤벼야 좀비인 건 아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여전히 수익도 못 내면서 수수료만 빼먹는 좀비 펀드가 수두룩하다며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세금 한 푼 안 내고 국회에 입성하겠다는 사람들, 저는 호의호식하면서 뼈 빠지게 일하는 노동자를 대변하겠다는 사람들, 온갖 탈법 불법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지도층 행세를 하는 사람들 모두 좀비에 다름 아니다. 성실한 이들의 피와 땀을 갉아먹고 있으니.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