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금 "무조건 안전자산"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면서 글로벌 자금이 안전자산으로 쏠리고 있다. 미국 독일 영국 등 주요국 국채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떨어졌고, 외환시장에서는 달러화에 이어 엔화 가치까지 급등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런 극단적인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30일(현지시간) 연 1.62%까지 떨어졌다. 1946년 이후 60여년 만의 최저치다. 5년물과 7년물 국채 금리도 각각 연 0.684%와 연 1.048%로 떨어지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 국채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그만큼 채권 가격이 올라간 것이다.

미국과 함께 대표적인 피난처로 분류되는 영국과 독일도 상황은 마찬가지. 영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1703년 정부가 채권을 처음 발행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연 1.65%로 가라앉았다. 2년짜리 독일 국채 금리는 아예 제로 수준까지 낮아졌다. 독일과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3%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실질금리는 일찌감치 마이너스로 돌아선 셈이다.

데이비드 코드 윌리엄스캐피털그룹 채권영업 책임자는 “시장의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며 “유로존에 대한 불안감이 아니라면 국채 금리가 이 정도까지 떨어질 리 없다”고 설명했다.

시장은 ‘장기전’ 분위기다. 수익성보다 안전성 위주의 투자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하다. 피델리오 타타 소시에테제네랄은행 애널리스트는 “유럽 위기가 해결되는 데는 수년이 걸릴 것”이라며 “지금 시장의 딜러들은 국채를 팔고 다른 자산을 살 의사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미국 등의 국채 금리가 지금보다 더 떨어질 가능성도 제기됐다. 앨런 러스킨 도이체방크 외환시장 전략가는 “시장에서는 유로존의 위기가 전 세계 경제로 확산될 위험성을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다”며 “미국 독일 등의 국채를 빼고 나면 안전자산으로 불릴 만한 것이 얼마 없는 만큼 금리는 더 낮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외환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유로화를 팔고 엔화를 사려는 주문이 줄을 이었다. 이로 인해 31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 가치는 유로당 97.91엔까지 올랐다. 1월17일 이후 4개월여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엔고(高)에 시달려온 일본 정부는 다시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즈미 준(安住淳) 일본 재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엔화 환율과 관련해 투기적인 움직임이 없는지 예의주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