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때 전 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은 브라운관 TV로 경기를 봤다. 당시 소니 등 일본 TV업체들은 세계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TV가 보급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삼성전자는 세계 1위 업체로 도약했고 40년 전 삼성전자에 TV 기술을 전수해줬던 일본 산요는 사라지고 말았다. 이같은 성과를 이뤄낸 삼성전자 영상사업부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프리미엄 TV 시장 선점

우선 LCD(액정표시장치) TV, LED(발광다이오드) TV 등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평판TV를 다른 어떤 경쟁자보다도 먼저 출시하면서 프리미엄 TV 시장을 선점한 점을 들 수 있다. 삼성전자 영상사업부는 2005년 40인치 대형 LCD TV를 3000달러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북미와 서유럽 고소득층의 삼성전자 TV 구매가 급증했고, 2006년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 TV업체로 등극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두께가 얇고 에너지가 절약되는 ‘에지형 LED TV’를 출시해 LED TV 시장도 선점해나갔다. 그때까지 경쟁자들 가운데 아무도 ‘에지형 LED TV’를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삼성전자 제품은 불티나게 팔렸다. 삼성전자 영상사업부의 2009년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700% 이상 증가한 2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두 번째로는 수직계열화를 강화해 수익성을 극대화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삼성SDI는 평판TV 패널을,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는 LED 칩을 각각 생산했다. 삼성전기는 튜너, 인쇄회로기판(PCB) 등을 공급했다. TV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부터 세트 조립까지의 수직계열화 구축은 일본과 중국 업체와 경쟁력 격차를 벌리는 데 주요한 요인이 됐다. 삼성은 유통업체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부품 조달부터 최종 판매까지 원스톱(one-stop)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덕분에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도 경쟁사들보다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삼성 브랜드 제고는 마케팅의 승리

올림픽과 월드컵 등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에 대규모 광고를 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기법으로 소비자들에게 ‘TV는 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심어준 것도 TV 시장 점유율 확대에 주효했다. 소비자가 TV를 구매할 때는 가격이나 기술보다 브랜드 파워가 미치는 영향력이 훨씬 크다. 2005년 TV에 적용한 ‘보르도’라는 와인 컨셉트는 소비자들에게 친밀감을 높여 삼성전자 TV 구매를 늘리는 데 큰 효과를 봤다. 2010년에는 영화 ‘아바타’를 활용한 3D TV 마케팅을 펼쳐 3D TV에서도 소비자들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삼성전자 영상사업부 TV 매출은 2005년 83억달러에서 2011년 231억달러로 178% 증가했다. 매출 기준으로 삼성전자 글로벌 TV 시장 점유율은 2005년 10.3%에서 2011년 23%로 12.7%포인트 늘었다. 이에 반해 강력한 경쟁자였던 소니의 시장점유율은 2005년 10.9%에서 11.8%로 0.9%포인트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소니는 특히 삼성전자와의 글로벌 TV 주도권을 둘러싼 싸움에서 패배하면서 2011년 6조4000억원에 이르는 순손실을 봐야 했다.

소니 외에도 샤프, 도시바, 파나소닉 등은 정부의 보조금 중단 이후 일본 내수시장의 위축과 엔고에 따른 수익성 하락으로 TV 사업을 축소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 시장에서 무리한 가격 경쟁을 피할 수 있게 된 국내 TV세트업체들의 수익성은 차츰 개선되는 추세다.

다만 지난해부터 평판TV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TV 시장 성장은 정체되고 있다. 올해 1분기 북미와 중국 LCD TV 판매량은 전년 대비 1% 증가로 둔화됐고, 서유럽은 20.7%로 급감했다. 따라서 삼성전자 영상사업부도 TV산업의 구조적 저성장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않으면 안 될 시점이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 영상사업부는 스마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를 통해 차세대 TV 시장을 선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스마트TV 시장 무한경쟁

삼성전자 스마트TV는 기존 TV와 달리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사람의 동작과 음성을 인식할 수 있는 제품이다. 향후 TV 시장에서 새로운 혁명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소비자들은 리모컨 없이 스마트폰이나 음성, 동작으로 TV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활용할 수 있다. 통신이나 케이블TV 사업자들은 스마트TV 보조금 지급을 검토하고 있어 고가의 스마트TV를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TV 보조금 지급은 제품 교체 시기를 단축시켜 TV 수요를 늘리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스마트TV 기능을 최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기술로 OLED가 꼽힌다. 스마트TV용 3D 콘텐츠(영화, 게임 등)가 빠르게 확산되고, 음성·동작 인식 기능이 3D 콘텐츠와 결합하면 가상현실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안경이 필요 없는 3D TV는 오직 OLED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에 스마트TV 패권을 잡기 위해서는 먼저 OLED 기술 개발이 필수적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향후 5년간 OLED에 20조원을 투자할 예정이지만 일본 업체들은 과도한 차입금으로 투자 여력이 많지 않아 경쟁력 격차는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업체들은 계속된 영업 부진으로 연구·개발, 마케팅, 설비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태다. 중국 TV업체들의 OLED 기술력은 삼성에 비해 아직 5년 이상 뒤처져 있다. 2014년 삼성전자 TV 시장 점유율은 30%를 넘어서면서 삼성전자 영상사업부의 독주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소현철 <신한금융투자 기업분석부 부장 johnsoh@shinh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