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6일(현지시간) 한국 자동차 수입에 대해 ‘우선 감시’ 조치를 취해 달라는 프랑스 정부의 요청을 검토하기로 했다. 경기침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에서 현대·기아차가 승승장구하자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경쟁사들이 견제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집행위가 우선 감시 조치를 결정하더라도 한국과 EU 간 자유무역협정(FTA)에 규정된 긴급 수입제한(세이프가드) 조치까지 실행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한·EU FTA 발효 후 양측 간 첫 대형 무역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 “한국차 우선 감시 신중 검토”

존 클랜시 통상총국 대변인은 이날 “집행위는 한국 자동차 수입에 대한 우선 감시 조치를 취해 달라는 요청을 프랑스 정부로부터 접수했다”며 “이 요청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집행위는 다음달 초까지 프랑스의 요청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행위는 특정 업계나 업체가 피해를 보고 있다고 회원국이 요청하면 이를 검토해 ‘우선 감시’를 실시하게 된다. 우선 감시 결과,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세이프가드 발동 절차에 들어간다.

집행위가 우선 감시 조치를 취하더라도 한·EU FTA에 규정된 세이프가드 조치까지 실행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감시 결과가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에 부합해야 하고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FTA 발효 1년여 만에 한국과 EU 간 무역 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도 부담이다. 한·EU FTA 협정은 수입이 급증해 자국 해당 업종이나 업체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거나 우려될 경우 세이프가드를 발동할 수 있도록 했다.

세이프가드 발동 가능성이 낮더라도 한국 자동차 업체가 우선 감시 대상이 되면 영업활동 위축이 우려된다. EU 당국이 한국 업체들의 주요 경영사항에 대해 지속적인 조사에 나서기 때문이다.

현대차 반발 “12%만이 한국산”

프랑스 정부는 “올해 현대·기아차의 판매량이 28.5% 늘어나는 등 한국 자동차 판매가 급증하면서 자국 업계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지난 3일 EU에 우선 감시 조치를 요청했다. 같은 기간 프랑스 내 자동차 판매량은 14.4% 감소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현대차 유럽법인의 안드레아스 보르자트 대변인은 “현대차의 유럽 내 판매 증가는 FTA에 따른 관세 인하 덕이 아닌 경쟁력 덕분”이라고 반박했다. 올해 상반기 유럽에서 등록된 현대차 23만2454대 가운데 12%만 한국에서 생산된 것이며 70% 이상은 체코 등 EU 내 공장에서, 나머지는 제3국에서 제조됐다고 설명했다. 보르자트 대변인은 “현대·기아차의 올 상반기 프랑스 시장점유율은 3.0%로 현대·기아차 유럽 전체 점유율 5.9%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기침체와 감원 등으로 악화된 민심을 달래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잘나가는 한국산 자동차를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조철 한국산업연구원 주력산업팀장은 “프랑스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자국산업을 보호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며 “이번 요청도 자국 산업 침체에 대한 여론악화를 의식해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 팀장은 “프랑스 내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늘어나고 있지만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며 “현대·기아차의 상승세를 견제하고 경영난을 겪고 있는 푸조-시트로앵과 르노 등의 구조조정에 대한 EU 정부의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 주요 목적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 우선 감시

prior surveillance. 특정 업계나 업체가 수입산 제품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다고 요청하면 통상 당국이 취하는 1단계 조치. ‘사전 감시’ 또는 ‘우선 동향 관찰’로도 불린다. 수입물량이 늘고 있는지 파악해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판단이 나오면 세이프가드 발동을 위한 본격적인 조사를 하고 결과에 따라 발동 여부를 정한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