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9월16일은 흰 수요일 사건(White Wednesday)으로 불리는 헤지펀드 업계의 역사적 이벤트가 있었던 날이다. 이 사건은 단일 헤지펀드가 특정국 정부, 그것도 세계 5대 강국 중 하나라는 영국을 무참히 무너뜨린 일대 사건이었다.

이 흰 수요일 사건, 즉 소로스 펀드의 영국 파운드화 공격을 주도한 주인공을 대부분은 소로스로 알고 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사건의 실질적 운용자는 당시 소로스의 펀드를 위탁운용하고 있던 스탠리 드러켄밀러였다. 그는 듀케인 캐피털의 창업자이자 헤지펀드 업계의 신성으로 알려졌다.

사건의 발단은 1990년에 유럽연합(EU) 국가들 사이에 체결된 유럽통화제도(EMS) 아래 환율조절메커니즘(ERM)에 영국이 가입하면서 빚어졌다. 유럽 내 단일통화권을 구축하려고 한 EU 국가들이 일종의 과도기적 조치로 회원국 간 기본환율을 설정한 준고정환율제도를 시행한 것이다.

소로스와 드러켄밀러는 이 제도의 필연적 실패를 예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위기는 곧 시작됐고 단초는 독일이 제공했다. 1990년 독일 통일이 이뤄졌고 통일된 독일 정부는 낙후된 구 동독지역을 구 서독지역에 버금가도록 발전시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엄청난 화폐가 풀렸고 독일정부는 인플레이션을 방어하기 위해 통일 후 2년 동안 10차례나 금리를 인상하는 강수를 뒀다. 영국을 비롯해서 독일과 환율이 연동된 국가들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영국 정부는 파운드화 폭락 방어에 나섰다.

드러켄밀러는 행동을 개시했다. 가능한 모든 자금을 동원해 파운드화를 공매도하기 시작했다. 드러켄밀러가 9월15일 하루 동안 쏟아부는 자금만 무려 100억달러에 달했고 다른 헤지펀드들도 이 전략에 동조해 이날 무려 1100억달러에 해당하는 막대한 금액의 파운드화 공매도가 이뤄졌다.

영국 정부는 경제논리가 아닌 순전히 정치논리로 보유 외환액을 다 풀어서 파운드화를 무차별적으로 사들였다. 단기금리도 10%로 인상해 파운드화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결국 헤지펀드업계의 총공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보유 외환을 탕진한 뒤 항복선언을 하고 다음날 ERM을 탈퇴했다. 이 사건으로 소로스펀드는 무려 11억달러(1조2000억원) 이상을 벌었으며 그 해 수익률은 68%에 달했다.

김지욱 < 삼성증권 이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