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눈은 어른보다 세상의 본질을 더 잘 꿰뚫는다. 오만과 편견, 지식의 가림막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시는 우리 삶의 근본을 맑게 비춰주는 거울이다.

신경림(사진) 시인이 첫 동시집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실천문학사)를 펴냈다. 올해 77세인 노시인이 동시를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동시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절실히 한 것은 손자가 생긴 뒤였다고 한다. 그로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손자의 생각과 행동을 읽으면서 이것을 형상화하면 정말로 훌륭한 문학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어쩌면 성인의 삶을 그리는 것 이상의 본격적인 인간탐구의 문학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투명하고 순수한 본성을 간직한 손자를 보며 떠올린 인간탐구의 작품이 이번 동시집이다. 1부는 아이들이 보는 주변환경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2부는 다람쥐와 노루 잉어 등 동물들과 친구가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3부는 아이의 옹알이 소리와 싸락눈 오는 소리 같은 세상의 평화로운 모습, 4부는 동화적 서사시 3편으로 구성돼 있다.

그는 “동시가 교육의 수단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며 “아이들에게 현실을 바르게 보게 해야 한다는 참여주의와도 다르다”고 했다. 물론 교육적인 효과를 거둘 만한 시들도 많다. 특히 다문화가족, 노숙인 등 소수자와 더불어 사는 자세가 눈길을 끈다.

‘내 짝꿍은 나와/ 피부 색깔이 다르다/ 나는 그 애 커다란 눈이 좋다// 내 짝꿍 엄마는 우리 엄마와/ 말소리가 다르다/ 나는 그 애 엄마 서투른 우리말이 좋다//(중략)// 나는 그 애 외가가 부럽다/ 고기를 잘 잡는다는 그 애 외삼촌이 부럽고/ 놓아기른다는 물소가 보고 싶다.’(‘달라서 좋은 내 짝꿍’ 중)

할아버지와 할머니 얘기도 많이 등장한다. ‘할아버지는 일본이라면 제일 싫어하고’ 또 ‘일제 때 혼난 얘기’를 자주 하지만 쓰나미가 일본을 덮친 모습을 보고는 ‘내 그럴 줄 알았어’ 혀를 끌끌 차다가 슬그머니 얼굴을 돌린다. 그런 할아버지의 눈에 글썽 눈물이 고였다.

그는 “이 동시들을 쓰면서 아이들의 세계에 들어가 아이들의 눈으로 세상을 살고 보았다”고 했다. 스스로 일흔일곱 살의 ‘소년’이 된 것. 부모들이 이 동시집을 읽어도 좋다. 잃어버린 동심을 조금이나마 되찾고 아이들의 생각과 시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적이 뭐 중요해 말하면서 공부 잘하는 애들만 귀여워하는 선생님’과 ‘우리 애는 실컷 놀게 내버려 둬요 말하면서 아무도 없을 땐 공부 안 한다고 야단치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거짓말은 나쁜 거야 알지만 선생님도 엄마도 그리고 나도’라고 되뇌인다.

표제작인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세상의 모든 부모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