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도처에 널려 있어…필요한 것 골라 쓰면 돼"
"인간은 기술 노예 아니다…함께 진화해가는 존재"
세계적 정보기술(IT) 잡지인 ‘와이어드(Wired)’의 공동창간자이자 수석편집장을 맡고 있는 케빈 켈리(60·사진)는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사회와 문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기술 사상가다.
그의 논지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미디어랩의 창시자인 니콜러스 네그로폰테로부터 찬사를 받고,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저서에서 인용할 정도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그는 과학철학서인 ‘기술의 충격’ ‘디지털 경제를 지배하는 10가지 법칙’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그는 스마트폰이나 트위터를 쓰지 않고 TV도 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의 얘기다.
24일까지 서울 광장동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서울방송(SBS) 주최로 열리는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 중인 켈리 편집장은 기자와 만나 “사람들이 모든 신기술을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해마다 새로 만들어지는 기술이 몇십만 가지가 넘기 때문에 골라 써야 한다는 얘기다. IT의 빠른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고 고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내가 트위터·스마트폰 등 신기술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기술에 대해 논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한다”며 “그들이 ‘신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것만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은 우리가 태어난 뒤에 발명된 것이 아니라 정수기나 의자, 책상 등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라며 “신기술에 압도될 필요가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한발 더 나아가 ‘인간도 기술의 일부’라고 말했다. 소를 길러 우유를 마시고 이를 통해 우유를 소화할 수 있게 진화하는 등 스스로를 발달시킨 ‘기술적’ 존재라는 것이다. 그의 저서 ‘기술의 충격’에서 제시한 ‘기술이 생물체처럼 진화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테크늄 개념과 맞닿아 있는 주장이다.
켈리 편집장은 “기술과 인간의 경계를 나누기가 모호하다”며 “터미네이터나 매트릭스처럼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달리 인간은 기술의 노예가 되지 않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의 흐름을 분석하는 사상가답게 최근 IT 업계의 화두인 ‘클라우드 컴퓨팅’과 ‘빅데이터’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인터넷 상의 서버에 정보를 저장하는 기술인 클라우드 컴퓨팅에 대해서는 “초기 단계라 아마존이나 구글 등 여러 클라우드 서비스가 난립하고 있지만 10년 뒤쯤이면 하나의 거대한 클라우드 서비스로 통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컴퓨터가 몇 덩이로 나뉘어 있을 때보다 하나로 합쳐졌을 때 연결이 촘촘해져서 더 가치 있는 클라우드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빅데이터는 ‘소유’의 문제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예측했다. 온갖 곳에 쌓이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빅데이터 기술이 발달하면서 이름·집주소·나이·질병기록 등 개인정보를 비롯한 각종 정보가 사적인 것인지 공적인 것인지 불분명해질 거라는 얘기다. 그는 “예컨대 구글에서 검색한 정보가 당신 소유인지, 구글 소유인지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켈리 편집장은 40여년 전 로드아일랜드대를 중퇴한 뒤 아시아 지역에서 배낭여행을 했다. 그런 경험 덕분인지 아시아를 ‘나의 대학’이라고 부를 정도로 애정이 많다. 한국에 오기 전인 지난 4, 5월 두 달 동안 인도·중국·싱가포르·미얀마 등을 둘러봤다고 했다. 그는 “특히 한국은 40년 전과는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며 “기술의 발달로 (한국이)어떻게 진화해 나갈지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