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56·구속)이 서미갤러리에 대출하는 과정에서 담보로 잡은 고가의 미술품을 개인적으로 유용, 하나캐피탈로부터 출자를 이끌어낸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해 하나캐피탈이 미래저축은행에 145억원의 유상증자를 해준 경위 등을 파악하기 위해 김종준 당시 하나캐피탈 사장(현 하나은행장)을 조만간 소환할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5월8일자 A1면 참조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단장 최운식 부장검사)은 23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하나캐피탈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유상증자 관련 서류와 컴퓨터 일체 등을 모두 가져갔다.

하나캐피탈은 지난해 9월 미래저축은행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 2대 주주(9.93%)가 됐다.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2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미래를 포함한 6개 저축은행에 대해 적기시정조치(부실 금융회사 경영개선 명령)를 유예한 지 불과 열흘 남짓 뒤였다.

당시 하나캐피탈 사장이었던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유상증자를 통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를 넘어섰고 연말에는 추가 자구계획으로 8%를 넘어설 것이라고 봤다”고 말했다.

당시 저축은행의 경영부실과 재무구조에 대한 불신이 금융계에 널리 퍼져 있던 것을 감안하면 대단히 낙관적인 시나리오에 기반한 판단이었다.

하나금융의 미래저축에 대한 유상증자는 사실 대출 성격이 강했다. 풋백옵션을 붙인 금리 연 10%짜리 ‘대출’에 가깝다. 미래저축은행이 해마다 원금의 10%를 이자로 내고, 연말까지 BIS 자기자본비율 8%를 맞추지 못하면 △그림 5점 △미래저축은행 대주주 일가의 지분 54.41% △서초동 미래저축은행 본사 사옥의 후순위권리 세 가지를 갖는 조건이었다. 유상증자에 참여한 김 회장의 지인 2명의 연대보증도 세웠다.

그러나 이 중 실제 담보가치가 있는 것은 그림 5점뿐이다. 사이 톰블리의 ‘볼세나’와 김환기 작품 1점, 박수근 작품 세 점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평가액이 수시로 바뀌는 그림, 그것도 개인 소유 그림을 담보로 145억원을 투자해 준 것 자체가 친분관계에 의한 결정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림의 ‘진짜’ 소유주도 여전히 의문이다. 미래저축은행이 서미갤러리에 285억원을 빌려주고 받지 못하자 담보로 잡은 그림이라는 의혹이 강하다.

검찰 일각에선 김 회장이 회사가 담보로 취득한 그림을 개인 담보로 유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대해 하나금융 측에서는 “김 회장의 개인 소유 그림이라는 점을 계약서에서 분명히 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하나금융은 그림 5점을 이미 경매로 처분해 약 90억원 정도를 회수했다. 취득한 지 1년도 안돼 담보를 처분했는데 그 가치가 대출금의 60%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검찰은 이 밖에 미래저축은행과 하나캐피탈의 중간 매개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69·구속집행정지중)에 대한 조사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이 개입했다는 진술도 속속 나오고 있다. 김찬경 회장은 검찰에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을 통해 김 전 회장과 가까워졌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이 하나캐피탈에 유상증자를 검토하라고 했다”고 전했다.

또 김 회장이 청와대 한 행정관의 친형 소유 병원을 농협과 유암코를 거쳐 특수목적법인(SPC)에 매각했다가 다시 돌려주는 방식으로 100억원가량의 빚을 탕감받게 해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이 이성규 유암코 사장(전 하나금융 부사장)에게 연락해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장성호/이상은 기자 ja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