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人마이스]국제회의 분야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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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회의 35년, 김승미 인세션(insession) 사장 인터뷰
-대학시절 현장스텝으로 첫 발, 국내 마이스업계 대표적 여성CEO로 활약
"뭐니뭐니 해도 멀티테스킹 능력때문이지 않을까요.여성들은 TV 드라마를 보며, 뜨개질을 하면서 수다를 떨어도 드라마의 흐름도 정확히 파악하고 바늘 코도 실수 없이 뜰 뿐 아니라 수다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 까지 모두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거든요(웃음)"
최근 국제회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 하다는 기자에 질문에 김승미 인세션 사장에게서 돌아온 답변이다.
김 사장은 대학시절 현장 스텝으로 시작해 35년 이상을 국내 국제회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 CEO이다.
초등학교 시절 김 대표는 안델슨의 동화를 읽으며 나중에 크면 전 세계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일을 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살아왔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국제회의 기획과 운영이라는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세계인과 소통하고 있는 김승미 인세션 사장을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처음 MICE업계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시절 '안델슨 동화집'과 '김찬삼 여행기' 등을 수 차례 반복해 읽으면서 상상과 공상을 즐겼다. 당시 꿈이 전 세계 사람을 모두 만나보는 것 이었을 정도였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마자 외국인 친구들과 펜팔을 시작했다. 어릴적 꿈에 때문이었던 것 같다(웃음).
대학에 입학하고 1학년 때 일이다. 당시 '아시아태평양 마약단속회의'가 국내에서 개최됐는데 우연한 기회에 현장 스텝으로 일하게 됐다. 아마도 그때가 마이스계에 첫 발을 내 디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 '국제경상학생연합회'라는 서클 활동을 통해 3학년 때부터 시드니, 홍콩 등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체계적인 글로벌 리더쉽 트레이닝을 받게 됐는데, 이 행사의 우리나라 스터디 투어를 주관하게 되면서 국제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대학 졸업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남편과 함께 많은 국제회의에 참가하다보니 주최자, 참가자, 협,단체 등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면서 소규모 세미나 등의 부대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게 됐다. 운도 따랐던 것 같다.
국내 국제회의 분야에 대표적 여성 CEO로써 창업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별다른 계기는 없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회사가 차려졌다고나 할까.
한참 국제회의 업무에 빠져있던 시절에는 "어떤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이 올까"하는 생각에 늘 가슴설랬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일에 대한 정성적 가치가 내 에너지에 원천이었다.
그냥 일이 좋아서 미쳤던 시절이었고, 모든 일이 기다려졌기 때문에 '사업을 한다', '창업이다'식의 거창한 고민은 따로 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들어 국제회의(PCO) 분야에 여성인력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한국 뿐 아니라 MICE 산업이 훨씬 일찍 시작된 유럽이나 미국도 여성인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다.
국제회의 분야에 여성인력이 늘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면한 것은 남성에 비해 장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소꿉놀이나 수를 놓고 뜨개질을 하는 등의 섬세한 작업에서 남성보다 좀더 세밀하고 끈기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또 여성 특유의 멀티테스킹 능력도 여성인력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뜨개질을 하면서 드라마를 본다. 거기다 수다까지 떨면서도 드라마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한다. 물론 바늘 코도 안 빠트리고 수다내용도 잊지 않는다. 사실 사업 초기에 우리 회사의 모든 인력이 여성으로만 구성됐던 이유도 이러한 장점 때문이었다.
우스게 소리로 당시 인세션 하면 '아마조네스공화국'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2~30%가 남성 인력이다.
국내 MICE산업의 과거와 미래,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국내 마이스산업, 그중에도 국제회의 분야를 놓고 봤을 때 양적으로 많이 늘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들의 다양한 경험이 축적됐고,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와 분야별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눈에 띠는 양적 성장을 달성한 셈이다.
향후 국제회의 분야에는 더 다양하고 특색있는 콘텐츠가 유입 될 것이며, 대규모가 전문화 추세가 급속히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우리나라 IT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를 기반으로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face to face' 미팅 뿐만 아니라 최첨단 'hybrid'미팅도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린컨벤션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
개인적으로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다. 2003년도 국제PCO협회(IAPCO)에 한국 최초로 가입하게 되면서 처음 참가했던 시드니에서의 연차 총회에서 그들의 다양한 그린컨벤션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린컨벤션은 국제회의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운영하는 모든 단계에서 '친환경 리사이클링'에 준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무실에는 종이로 문서화하는 작업을 최소화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형식적인 인쇄물이나 POP물 등 외형적인 보여짐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준비 단계에서 부터 불필요한 제작물은 최소화하는 한편 국제회의 개최도시 현장에도 친환경 리사이클링 제품을 적용하고 모든 설치 장치물들은 사후 활용도를 면밀히 검토한 후 최소화 하는식의 활동이 절실하다.
잔여 물품을 나눔고 foot print(탄소발자욱)을 최소화 하는 등 환경에 대한 작은 실천이 분명, 마이스산업 전체에 대한 미래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믿고있다.
향후 목표와 바램이 있다면.
MICE는 바로 나의 삶 자체이다. MICE 또는 PCO가 아닌 나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컨벤션분야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계산해 보면 35년이다.
5년 전 1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냐면 돌아간다 해도 또 다시 이만큼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후회하지 많는다는 말이다.
개인적인 목표는 빠르면 5년 이내 나보다 더 나은 후배들이 회사에 선봉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저 또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다른 분야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크게 후회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다고 생각한다. 바람은 내 후배들이 멋지게 이어받아 줬으면 한다. 분명, 그들의 순에너지가 내가 이루지 못한 부분까지 충분히 달성 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
-대학시절 현장스텝으로 첫 발, 국내 마이스업계 대표적 여성CEO로 활약
"뭐니뭐니 해도 멀티테스킹 능력때문이지 않을까요.여성들은 TV 드라마를 보며, 뜨개질을 하면서 수다를 떨어도 드라마의 흐름도 정확히 파악하고 바늘 코도 실수 없이 뜰 뿐 아니라 수다를 통해 하고싶은 이야기 까지 모두 전달하는 능력을 가졌거든요(웃음)"
최근 국제회의 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인력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 법 하다는 기자에 질문에 김승미 인세션 사장에게서 돌아온 답변이다.
김 사장은 대학시절 현장 스텝으로 시작해 35년 이상을 국내 국제회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여성 CEO이다.
초등학교 시절 김 대표는 안델슨의 동화를 읽으며 나중에 크면 전 세계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는 일을 하겠다는 막연한 꿈을 품고 살아왔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국제회의 기획과 운영이라는 글로벌 네트워킹을 통해 세계인과 소통하고 있는 김승미 인세션 사장을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처음 MICE업계에 진출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시절 '안델슨 동화집'과 '김찬삼 여행기' 등을 수 차례 반복해 읽으면서 상상과 공상을 즐겼다. 당시 꿈이 전 세계 사람을 모두 만나보는 것 이었을 정도였다. 중학교에 입학하자 마자 외국인 친구들과 펜팔을 시작했다. 어릴적 꿈에 때문이었던 것 같다(웃음).
대학에 입학하고 1학년 때 일이다. 당시 '아시아태평양 마약단속회의'가 국내에서 개최됐는데 우연한 기회에 현장 스텝으로 일하게 됐다. 아마도 그때가 마이스계에 첫 발을 내 디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이후 '국제경상학생연합회'라는 서클 활동을 통해 3학년 때부터 시드니, 홍콩 등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당시 체계적인 글로벌 리더쉽 트레이닝을 받게 됐는데, 이 행사의 우리나라 스터디 투어를 주관하게 되면서 국제회의 매력에 빠져들게 됐다.
대학 졸업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남편과 함께 많은 국제회의에 참가하다보니 주최자, 참가자, 협,단체 등과의 교류가 자연스럽게 늘어나게 되면서 소규모 세미나 등의 부대행사를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게 됐다. 운도 따랐던 것 같다.
국내 국제회의 분야에 대표적 여성 CEO로써 창업을 결정하게 된 계기는.
별다른 계기는 없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같은 생각과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회사가 차려졌다고나 할까.
한참 국제회의 업무에 빠져있던 시절에는 "어떤 나라에서 어떤 사람들이 올까"하는 생각에 늘 가슴설랬던 기억이 있다. 그만큼 일에 대한 정성적 가치가 내 에너지에 원천이었다.
그냥 일이 좋아서 미쳤던 시절이었고, 모든 일이 기다려졌기 때문에 '사업을 한다', '창업이다'식의 거창한 고민은 따로 해본 적이 없었다.
최근들어 국제회의(PCO) 분야에 여성인력이 증가하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한국 뿐 아니라 MICE 산업이 훨씬 일찍 시작된 유럽이나 미국도 여성인력이 압도적으로 많은 게 사실이다.
국제회의 분야에 여성인력이 늘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분면한 것은 남성에 비해 장점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여성들은 소꿉놀이나 수를 놓고 뜨개질을 하는 등의 섬세한 작업에서 남성보다 좀더 세밀하고 끈기 있다는 장점을 지녔다. 또 여성 특유의 멀티테스킹 능력도 여성인력 증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여성들은 뜨개질을 하면서 드라마를 본다. 거기다 수다까지 떨면서도 드라마의 흐름을 정확히 이해한다. 물론 바늘 코도 안 빠트리고 수다내용도 잊지 않는다. 사실 사업 초기에 우리 회사의 모든 인력이 여성으로만 구성됐던 이유도 이러한 장점 때문이었다.
우스게 소리로 당시 인세션 하면 '아마조네스공화국'이라고 불리던 시절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2~30%가 남성 인력이다.
국내 MICE산업의 과거와 미래,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국내 마이스산업, 그중에도 국제회의 분야를 놓고 봤을 때 양적으로 많이 늘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국내 PCO(Professional Convention Organizer)들의 다양한 경험이 축적됐고, '코리아'라는 국가브랜드와 분야별 전문성이 높아지면서 눈에 띠는 양적 성장을 달성한 셈이다.
향후 국제회의 분야에는 더 다양하고 특색있는 콘텐츠가 유입 될 것이며, 대규모가 전문화 추세가 급속히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우리나라 IT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인 만큼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속도를 기반으로 테크놀로지를 바탕으로 'face to face' 미팅 뿐만 아니라 최첨단 'hybrid'미팅도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린컨벤션을 강조하고 있는데, 어떤 내용인지.
개인적으로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다. 2003년도 국제PCO협회(IAPCO)에 한국 최초로 가입하게 되면서 처음 참가했던 시드니에서의 연차 총회에서 그들의 다양한 그린컨벤션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그린컨벤션은 국제회의를 기획하고 추진하고 운영하는 모든 단계에서 '친환경 리사이클링'에 준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사무실에는 종이로 문서화하는 작업을 최소화 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최첨단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형식적인 인쇄물이나 POP물 등 외형적인 보여짐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준비 단계에서 부터 불필요한 제작물은 최소화하는 한편 국제회의 개최도시 현장에도 친환경 리사이클링 제품을 적용하고 모든 설치 장치물들은 사후 활용도를 면밀히 검토한 후 최소화 하는식의 활동이 절실하다.
잔여 물품을 나눔고 foot print(탄소발자욱)을 최소화 하는 등 환경에 대한 작은 실천이 분명, 마이스산업 전체에 대한 미래 가치를 높일 것이라고 믿고있다.
향후 목표와 바램이 있다면.
MICE는 바로 나의 삶 자체이다. MICE 또는 PCO가 아닌 나의 삶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컨벤션분야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계산해 보면 35년이다.
5년 전 10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없다. 왜냐면 돌아간다 해도 또 다시 이만큼 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후회하지 많는다는 말이다.
개인적인 목표는 빠르면 5년 이내 나보다 더 나은 후배들이 회사에 선봉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저 또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다른 분야 일에 도전해보고 싶다.
크게 후회없이 나름대로 열심히 해 왔다고 생각한다. 바람은 내 후배들이 멋지게 이어받아 줬으면 한다. 분명, 그들의 순에너지가 내가 이루지 못한 부분까지 충분히 달성 할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한경닷컴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