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71)을 만나기 위해 찾아간 5월의 원주. 초록빛 산에 둘러싸인 도시는 평화로웠다. 시청 앞 아파트에 산다는 시인은 진회색 개량 한복을 입고 나타났다. 지팡이를 짚은 채, 걸을 땐 다리를 절뚝거렸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다 오랫동안 심한 옥고까지 치른 몸. 건강은 좀 어떠냐고 묻자 “그래도 요즘은 좀 나아”하며 “벌써 점심 때가 됐으니 근처 음식점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는 최근 시집 《시김새》를 발표했다. 시집 서문에는 K팝과 한류, 르네상스 등 시와는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단어들이 많이 나온다.

▷이번 시집은 예전과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좀 달라요. 예전엔 정치적이고 반항적이었는데 이번엔 주로 내 생각, 생활을 담았다고 할까….”

▷‘시김새’는 무슨 뜻입니까.

“시김새는 판소리 용어인데 시김은 ‘삭임’, 삭인다는 뜻이에요. 울분이, 슬픔이, 괴로움이 끓어오를 때 삭인다는 것, 이게 우리 민족의 특징이지. 슬픔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의 이중 표현이고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흰 그늘’…. 이 아련함이 앞으로 한류와 르네상스를 이끌어 갈 거예요.”

▷한류와 르네상스 같은 말도 많이 나오는데.

“앞으로 한류를 통해 우리나라가 세계 문명을 이끈다는 거죠. 르네상스가 중세 이탈리아에서 발현됐는데 우리가 이탈리아와 비슷한 점이 많아. 반도에다 나라 안에서 남북간 기질이 다른 것도 그렇고. K팝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문화가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인사동에서 고전 읽어주는 일을 하는 한 후배에게 물어봤더니 서양 사람들이 고전이나 붓글씨, 지방 화가들 얘기까지 별별 걸 다 묻는다는 거야. 정말 문화가 최고의 상품이지….”

우리나라가 세계 문화를 이끌 것이라는 예측이 맞을지 궁금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간단한 나라가 아니다. 지난 선거 결과만 봐도 그렇지 않느냐”고 했다. 자연스레 정치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는 “좌파들이 불안하게 하니까 국민들이 바로 뒤집어 버렸다”며 “그렇다고 박근혜 씨가 대통령하는 건 반대”라고 말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박정희 향수인데, 좌파가 얼마나 못하면 그 옛날 박정희를 그리워하겠어요. 통합진보당이 선거 부정을 저질렀는데 반성하는 기미가 보여? 그 사람들 내가 훤히 아는데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낄 것 같아? 천만에. 그쪽 말은 지금 ‘공산주의 왕국’ 건설하는 데 부정 좀 저지르면 어떠냐는 거지.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선거 체제 좀 속여먹으면 어떠냐 이거야.”

▷이른바 진보 진영의 도덕적 우월감도 작용했겠죠.

“보통 우월감이 아니지. 그런데 우월감이라는 건 그럴 조건과 자격이 주어졌을 때 우아한 건데 그렇지 않으면 아주 추해요.”

▷1970년에 시 ‘오적(五賊,재벌·국회의원·고급공무원·장성·장차관)’을 발표했으니 벌써 40년이 넘었군요. 요즘에도 ‘오적’이 있습니까.

“오적? 오적이 아니라 오십적, 오백적이 설쳐요. 별의별 도둑놈들이 많아. 최시중은 물론이고 이정희도 도둑이지. 마찬가지야 둘 다. 요즘 인기있는 나꼼수는 정의로워? 그것도 다 도둑이야, ‘말 도둑’. 우리나라 말이 그렇게 더러운 말이 아니에요. 지하철에서 열여섯 살 된 여고생들이 욕하고 다니는 게 좋은 건가? 그건 나꼼수 영향도 커요. 거기서 얘기하는 것들이 순 거짓말이지, 어디 그게 사실인가? 물론 긍정적인 면도 있긴 하지요. 비틀어서 사회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 우리 민족이 풍자가 강한 민족이니까 막말도 하나의 문화로서 역설적인 역할은 있지만, 이건 아니지.”

▷지금의 ‘오적’ 중에 가장 큰 적 하나만 꼽는다면.

“하나만?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적은 ‘외국 모방’이에요. 미국은, 유럽은 이렇게 하니까 따라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어요. 경제도 그래. 지금까지 우리는 맨날 미국 유럽 쫓아다니면서 쉽게만 배웠어. 누가 이렇게 했으니까 우리도 하자. 그러다보니 국민 삶을 생각 못하는 ‘껍데기 경제’가 늘어났고 그걸 파고든 게 좌파예요. 실제로 소득은 줄어든 게 아니라 엄청나게 늘었는데도 좌파들의 공격 근거를 만들어 준 게 그런 거지. 밥은 먹는데 배부르다는 느낌을 못 갖는 결핍감이 사람들에게 있는 거예요.”

▷그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간단히 이야기하면 ‘중도’를 찾아야 해요. 자본주의적인 개인 이익도 중요시하고 동시에 재분배도 해서 국민 삶에 풍요로움을 주고…. 그런 시장이 내가 주장하는 ‘신시(神市)’예요. 옛날 아시아 시장에는 ‘호혜’ ‘교환’ ‘재분배’가 모두 들어있었는데 경제 제도가 바뀌면서 호혜는 종교적 자선으로, 교환은 자본주의적 시장으로, 재분배는 사회주의로 각자 찢어졌지. 이걸 융합하는 게 신시인데 마치 지금 남아 있는 5일장처럼 정이 넘치는 것, 이게 곧 중도예요. 이건 요즘 유행하는 재벌이 돈 많이 먹었다는 식의 주장과는 근본적으로 달라.”

▷중도를 이야기하면 회색분자 취급을 받는 분위기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성향을 봐서는 중도로 갈 수밖에 없어요. 박근혜가 독재자의 딸인데도 사람들이 지지하잖아요. 누구라도 인정해 줄 만할 땐 인정하자는 거죠. 독재했지만 그래도 국민들 먹여살리려고 애쓴 건 인정하자는 겁니다. 그 와중에 그린벨트도 만들고…. 그게 중도이고 국민 감정인 거예요. 안철수를 지지하는 것도 중도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 건데, 중도적인 국민이 자꾸 늘어나고 있어요.”

▷일흔이 넘었는데 돌이켜보니 ‘잘 살았다’ 싶은지요.

“잘 살기는…. 나는 그렇게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4·19 혁명 때 대학생이었어요. 광화문 지나가는데 동기들이 같이 시위하자고 하더라고. 그땐 이념도 지향점도 없는 시위라고 생각해서 그냥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튿날 아무래도 찜찜해서 나가보니 학생 구두닦이 신문팔이 아줌마 모두 만세를 부르고 있는 거야. ‘아, 내가 잘못 판단했구나’ 싶어서 눈물이 쏟아지더라고. 그날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걸 다하겠다고 결심했지. 그 결심으로 살아온 것뿐이고.”

그는 다시 한류 이야기를 꺼내며 세계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옮겨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계속 초강대국으로 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에서 미국 비판 발언을 하는 사람이 대통령 되는 건 상당히 위험해요. 16대 대선 때 운동권에서조차 노무현 당시 후보가 미국에 잠깐 갔다왔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자꾸 반미 발언을 하니까. 그런 발언에 젊은 사람들은 박수칠지 몰라도 전체적으론 위험하거든. 그런데 언론에서 노 후보에게 미국 언제 가느냐고 물었을 때 ‘시간 있을 때 가겠다’고 했잖아. 허허. 큰일났다 싶었지. 우리나라에서 미국과의 관계는 단순한 ‘관계’가 아닙니다. 손자병법에 ‘강한 적과 약한 적을 혼동하면 필전필패’라고 했는데 우리가 잘 새겨들어야 해요. 미국을 우습게 보면 이 동아시아에서 못 살아남아.”

그는 우리나라 정치는 느긋하게 앉아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항상 긴장하며 진지하게 임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잘될 거예요. 하지만 국제 정세가 긴박하고 북한이 무너질 수 있으니 정치를 잘해서 관리도 잘 해야 해요.”

▷앞으로 어떻게 지낼 생각입니까.

“끊임없이 공부해야지요.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그렇게 지내다가 죽는 거지 뭐. 허허허.”


김지하 시인은 1970년대 민주화 상징…필화사건에 사형 선고까지

김지하 시인은 1970년대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 저항과 도피, 투옥과 고문 등 형극의 길을 걸으며 사형선고까지 받았다.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194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1969년 ‘시인(詩人)’지에 ‘황톳길’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64년 대일굴욕외교 반대투쟁에 가담해 첫 옥고를 치렀고 ‘오적 필화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으로 8년간 투옥됐다.

1980년 출옥 후 동서양의 철학과 한국의 전통 사상을 아우르는 생명사상을 제창했다.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의 사위이기도 하다.

시집으로 《타는 목마름으로》《오적》《시삼백》 등이 있고 회고록 《흰 그늘의 길》과 《김지하 사상전집》 등의 저서가 있다.

원주=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