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국산 자동차 판매량은 하향곡선이지만 수입차의 상승세는 꺾일 줄 모른다. 하지만 찬란한 빛 속에도 그늘은 존재하는 법. 국내에서 판매 중인 수입차 가운데 올 들어 단 한 대도 안 팔린 모델들이 있다. 수입차들의 인기행진 속에서도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차들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판매량 제로(0)의 ‘루저(loser)’ 모델을 키 172㎝로 180㎝에 훨씬 못 미치는 ‘루저’ 기자가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소개한다.

[1] BMW 액티브 하이브리드7

국내에서 지난달에만 2727대를 판매한 BMW. 그러나 BMW코리아에도 고민은 있다. 하이브리드카(휘발유·전기 혼용차)가 말썽이다. 플래그십(기함) 7시리즈의 하이브리드 버전인 액티브 하이브리드7은 올 들어 한 대도 안 팔렸다. BMW를 찾는 그 많은 소비자들은 디젤만 바라보는 것일까. 스포츠유틸리티 차량(SUV) 모델인 액티브 하이브리드 X6도 단 한 대만 팔렸을 뿐이다. 오는 24일 개막하는 부산모터쇼에 액티브 하이브리드5가 출시되는데 이 차는 과연 얼마나 팔릴지 궁금하다.

[2] 아우디 A4 2.0 TFSI, A8 3.0 TFSI 콰트로 NWB

두 모델명을 보는 순간 ‘헉!’ 했을 것이다. 기자도 그랬다. 설마 아우디가…. 물론 A4가 한 대도 안 팔린 건 아니다. A4 2.0 TFSI만 ‘판매 제로’다. 독일 고급 브랜드에서 가솔린에다 전륜구동인 이 모델은 발 붙일 공간이 없어 보인다. 실제로 아우디는 현재 이 모델을 판매하지 않고 있다. 반면 디젤 모델인 A4 2.0 TDI는 580대, 4륜구동인 A4 2.0 TFSI 콰트로는 493대 팔렸다. A8 3.0 TFSI 콰트로 NWB(노멀휠베이스)는 같은 체급의 LWB(롱휠베이스)에 밀렸다. 150㎜의 차이가 이 같은 결과를 가져왔다. 아우디측은 이에 대해 "통계 수치가 잘못 집계돼서 NWB모델의 판매량이 0으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3] 시트로앵 DS3 1.4 e-HDi

시트로앵은 미쓰비시와 함께 비운의 수입차로 불린다. 미쓰비시도 현재 한국수입자동차협회의 통계상으로는 전 차종이 ‘0’이다. 회사 측은 10대 정도 팔렸는데 아직 반영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시트로앵은 두 차종을 내놓았다. DS3 1.4 e-HDi와 1.6 VTi다. 이 중 가솔린 모델인 1.6 VTi는 지난달 6대 팔렸다. 1.4 VTi는 연비 20.2㎞/ℓ짜리 디젤 모델이라는 매력을 갖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기아차 레이보다 못한 최고출력 68마력을 용납할 순 없었던 것 같다.시트로앵은 "1.4모델이 인증절차가 마무리 돼지 않아 등록이 안 됐을 뿐 실제로 판매는 됐다"고 말했다.

[4] 푸조 508 2.2HDi, RCZ M6

푸조의 중형 세단 508 2.2HDi는 동생들에게 밀렸다. 연비 22.6㎞/ℓ로 실용성 만점의 1.6 e-HDi와 최고출력 163마력, 연비 18㎞/ℓ짜리 웰메이드 세단인 2.0 HDi가 심심치 않게 팔리고 있기 때문이다. 2.2 HDi는 204마력의 최고출력과 45.9㎏·m의 최대토크로 다이내믹함을 강조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자리는 BMW 320d가 꿰차고 있다. 푸조의 스포츠 쿠페인 RCZ는 제법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M6 모델은 한 대도 안 팔렸다. 고성능 모델이라 비싸서가 아니다. M6는 6단 수동기어라는 뜻이다.

[5] 포르쉐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 카이엔S 하이브리드

포르쉐는 지난해 국내 시장에서 1000대도 넘게 팔았다. 올해도 4월까지 판매량이 449대다. 올해는 1200대도 넘을 기세다. 하지만 최근 출시된 911 카레라 중 카브리올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판매호조 속에서 한 대도 안 팔린 걸 보면 카브리올레는 포르쉐 마니아들의 취향은 아닌 모양이다. 하이브리드도 그렇다. 포르쉐 판매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SUV 카이엔의 인기도 하이브리드 모델인 카이엔S 하이브리드는 외면했다.

[6] 롤스로이스 팬텀, 롤스로이스 팬텀 드롭헤드 쿠페

롤스로이스의 기함 팬텀, 그리고 팬텀의 소프트톱을 얹은 쿠페 모델인 트롭헤드 쿠페가 0대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고스트가 출시된 후 아무래도 고객들의 선호가 이쪽으로 쏠리는 모습이다. 거대한 팬텀보다 조금 덜 거대한 고스트의 덩치가 부담감이 덜한 탓일 것이다. 고스트가 현재까지 4대가 팔린 것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팬텀보다 고스트가 가격이 싸서 그런 것 아니냐고? 이런 차를 살 수 있는 부자들에겐 5억원이나 7억원이나 그게 그거 아닐까?

[7] ‘아 옛날이여’ 마이바흐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브랜드이지만 롤스로이스와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이건희 삼성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의 출퇴근이나 야구장 나들이용 차로도 유명하다. 판매부진으로 2013년부터 생산중단이 결정됐다. 남은 물량이 여전히 판매되고 있지만 아무리 명차라도 단종될 차량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