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파주 운정 보상금 '3조원 결투'
요즘 경기 파주시 운정동 일대 주민들이 모이는 곳에는 항상 외부 손님들이 있다. 대부분 금융회사 직원들이다. 체육대회라도 열라 치면 음료수 등을 사 와서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얼굴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은행 지점장들이 줄을 선다. 가가호호 우체통마다 세무상담·법무상담을 무료로 도와주겠다는 금융사들의 유인물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광경도 흔하다. 재테크 세미나를 빙자한 은행의 고객유치 행사도 수시로 열리고 있다.

금융사들이 노리는 것은 토지보상금이다. 파주 운정3지구 주민들에게는 오는 8월부터 모두 3조2000억원 규모의 보상금이 나온다. 수도권에서 대규모 보상금이 풀리는 것은 2008년 서울 마곡지구 이후 4년 만이다. 금융위기 이후 오랜만에 나타난 ‘격전지’에서 시중은행들은 거액의 예금을 유치하러 나서고 있고, 증권사들은 토지보상채권을 매입하기 위한 물밑작업에 분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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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들은 저마다 ‘보상금이 들어오는 계좌’를 끌어오기 위해 혈투를 벌이고 있다. “계좌를 다른 은행에 뺏기면 이미 게임 끝”이라는 것이다.

이형권 하나은행 서북영업본부장은 “보상금이 실제로 나올 때 영업을 하려면 너무 늦고, 그 이전에 개인적인 연고를 동원하든지 주민 행사에 찾아다니든지 해서 최대한 많은 주민들을 접촉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본점 차원의 지원도 아끼지 않고 있다. 박노택 우리은행 PB영업전략부장은 “현장을 뛰는 직원들이 고객 상담 건을 가져오면 본점에서는 즉각 우수한 프라이빗뱅커(PB)들을 연계해 세금·상속·대토문제 등을 맞춤형으로 서비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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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성적표가 가장 우수한 금융사는 농협이다. 농촌지역의 특성상 오랫동안 지역농협과 거래한 주민들이 많고 관계도 끈끈해서다. 게다가 지난 3월 금융지주 출범 후 전사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는 것도 영향을 주고 있다. 박진용 농협은행 파주시지부 부지점장은 “운정3지구는 사업이 지연돼 미리 대출을 받아놓고 이자를 내지 못하는 노년층 고객이 많다”며 “이들에게 개인 사정에 따라 몇 달씩 이자 상환을 유예해 주고 있다”고 전했다.

증권사들의 영업도 활발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만기 5년짜리 토지보상채권을 증권사에 팔고 현금을 받을 때는 통상 2~3% 할인된 금액을 받는데 이 지역은 요즘에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할인율(금융사 마진)이 1% 정도로 낮아졌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