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가 급락은 지난해 8~9월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스 재정위기를 시작으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외국인이 국내 주식시장에서 이탈하는 모습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렉시트(Greek+exit·그리스의 유로존 퇴출)’의 충격은 지난해 8~9월 그리스 채무 불이행(디폴트) 우려가 제기됐을 때보다는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아직까지 우세하다. 시장 여건을 작년 하반기와 비교해 봤다.

○외국인 매도, 작년 8월 수준

주가 급락의 원인과 진행 과정은 지난해 8~9월과 비슷하다. 당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문제의 시발점은 그리스다. ‘그렉시트’ 우려에 불안감을 느낀 외국인은 국내 주식을 대거 팔아치우며 주가를 끌어내리고 있다.

외국인은 이달 들어 17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2조730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달 외국인의 하루평균 순매도 금액은 2275억원으로 지난해 8월 2102억원보다 크다. 외국인은 지난해 8월 한 달간 4조6239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재훈 미래에셋증권 시황분석팀장은 “유럽 재정위기로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 보유 비중을 줄이고 있다”며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으로 유럽계와 미국계 자금이 동반 이탈하고 있다”고 말했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으로 따져 본 코스피지수 하락폭도 지난해와 비슷하다.

이날 종가(1845.24)를 기준으로 한 코스피지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2배로 지난해 9월26일의 0.99배와 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 PBR이 1배 미만이라는 것은 주가가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도 못 미칠 만큼 떨어졌다는 의미다. PBR 1배를 적용한 코스피지수는 1770이다.

○미국 회복, 중국 긴축 완화 긍정적

미국 경제가 회복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보다 긍정적인 점이다.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8.1%로 지난해 8월 9.1%보다 1%포인트 낮아졌다. 매주 집계되는 미국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지난달 이후 36만~38만건으로 지난해 8~9월 39만~42만건보다 적다.

중국 경제는 회복세가 둔화됐지만 긴축을 완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중국은 기준금리를 지난해 7월 연 6.56%로 올린 이후 지금까지 동결하고 있으며 지급준비율은 지난해 11월 이후 세 차례에 걸쳐 1.5%포인트 인하했다.

그리스 재정위기가 유럽 은행권 신용위기로 번질 위험도 낮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민간 은행들이 지난 3월 헤어컷(채무 탕감)을 통해 그리스 국채 보유 규모를 줄였고, 유럽중앙은행(ECB)의 1, 2차 장기대출프로그램(LTRO)을 통해 은행 유동성이 보강됐기 때문이다. 유럽 은행권의 그리스 국채 보유액은 1000억유로로 지난해 8월 2100억유로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그리스가 디폴트에 빠질 경우 민간 은행들이 입을 손실 규모가 그만큼 감소했다는 의미다.

○정책 대응이 관건

관건은 ‘그렉시트’를 둘러싼 정치적 불확실성이 얼마나 빨리 가라앉고 ECB 등 정책당국이 어떤 대응책을 내놓느냐는 것이다. 지난해 하반기 코스피지수가 최저점을 기록한 시점(9월26일)은 주요 20개국(G20)이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증액 △유럽 금융권 자본 확충 △그리스 부채 50% 탕감 등 ‘그랜드 플랜’을 내놓은 때(9월30일)와 비슷하다.

이상재 현대증권 투자전략부장은 “그리스 국민이 다음달 2차 총선에서 긴축과 유로존 잔류를 선택할지, 긴축 반대와 유로존 탈퇴를 선택할지가 중요하다”며 “그 전에라도 ECB가 3차 LTRO나 국채 매입 확대 등의 정책을 내놓는다면 시장의 불안감이 가라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