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강자가 없는 치열한 경쟁이 아메리카스컵의 매력입니다. 물 위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렸던 경험을 살려 팀을 효율적으로 경영하고 있죠.”

아메리카스컵에서 네 차례 우승한 ‘살아있는 전설’ 러셀 쿠츠(50·사진)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아메리카스컵 월드시리즈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오라클 레이싱’이라는 팀 로고를 박은 모자를 쓰고 나타났다. 햇살에 그을린 얼굴과 손바닥에 박힌 굳은살이 노련한 ‘세일러’를 확인시켜줬다.

그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직접 요트에 오른다. 팀의 주요 크루(선원)가 런던올림픽 준비로 빠진 자리를 메우는 것. 그는 “여전히 경쟁하는 걸 즐긴다. 몸은 예전보다 약간 처졌어도 경쟁은 항상 즐거운 일”이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아메리카스컵에서 깨지기 힘든 기록을 세운 주인공이다. 스키퍼로 나선 경기에서 14승 무패의 승률을 기록했으며 3개팀에서 네 번의 우승을 거뒀다. 1995년 고국 뉴질랜드에 첫 우승의 감격을 안겼고, 2000년 대회에서 2연승을 올려 미국이 아닌 국가에서 아메리카스컵을 방어한 첫 주인공이 됐다.

뉴질랜드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른 그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다도 없는 스위스의 알링기팀으로 이적한 것. 아메리카스컵 우승을 위해 거액을 투자한 스위스팀에 팔려간 것 아니냐는 비난이 빗발쳤지만 그는 2003년 고국의 팀뉴질랜드를 꺾고 사상 처음으로 유럽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세 번은 세일러로서, 한 번은 경영자로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강한 팀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빨리 달릴 수 있는 요트를 디자인해야 하고, 그런 요트를 건조해야 하며, 충분한 자금을 끌어모아 효율적으로 팀을 운영해야 합니다. 단순히 스포츠팀을 요트 위에 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죠. 컨설팅, 기술, 훈련, 예산, 경영 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기업을 운영하는 것과 같아요. 실제로 120~200명이 일하는 작은 기업이기도 해요.”

CEO로서 그의 리더십 철학은 확고했다. “세일러들은 레이스 도중 물 위에서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합니다.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CEO도 마찬가지죠. 팀의 주요 방향을 결정하는 전략적인 역할에 집중합니다. 팀의 크루들이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그들을 믿고 돕고 있죠.”

팀의 가장 큰 후원자이자 오라클 경영자인 래리 엘리슨과 호흡도 잘 맞는다. 그는 “엘리슨은 최고 결정권자로서 팀의 방향과 비전에 대한 중요한 결정을 한다”며 “각각의 성과에 대해 등급을 매기는 것이 아니라 잘했다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해주는 그와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아메리카스컵에 처녀 출전해 5위를 달리고 있는 팀코리아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팀코리아는 주어진 여건 속에서 아주 잘해왔지만 현재로선 기업의 지원이 절실합니다. 능력은 충분히 갖춘 것 같아요. 조선산업이 발달한 한국에서 요트산업이 커나갈 조건도 유리하죠. 우리 오라클처럼 기업의 지원만 있다면 기술, 레이싱 스킬, 경험 많은 인재, 유능한 경영자 등을 갖춘 팀코리아가 분명히 잘할 수 있다고 확신해요.”

베네치아=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