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에 위치한 '청량리청과물도매시장'. 입구에서 안 쪽으로 100여m 들어가니, 상자를 쌓아올린 상점들이 양편으로 길게 줄지어 있다. 일명 '땡처리 시장'이다. 장을 보러 나온 인파로 북적이던 청과물시장과 달리 이곳에는 상자를 싣고 내리는 트럭만 끊임 없이 오갔다.

청량리 땡처리 시장에는 700여m 거리에 라면, 전통장, 음료 등 다양한 종류의 가공식품을 파는 상점이 100여개에 달했다.이곳은 1970년대부터 운영된 도매시장으로, 업계 관계자 이외에 이 시장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 상자 단위로 판매하고 있어 일반 소비자가 아닌 소매점 상인들이 시장의 주요 고객이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상점당 하루 평균 거래규모는 500만원 수준이다.


이 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가공식품을 '터무니 없이' 싼 가격에 판다는 것.

라면과 장류를 파는 한 상점에는 인기라면인 신라면을 비롯해 삼양라면, 진짜진짜, 남자라면 등 다양한 종류의 라면 상자가 가게의 간판 앞까지 쌓여 있다. 이 상점에서 삼양라면 한 박스의 가격은 1만3900원으로, 권장소비자가격(2만8000원)보다 50% 이상 싸다. 신라면 5개들이의 경우 2880원으로, 1020원 더 저렴했다. 이는 인근에 있는 대형마트 홈플러스의 판매가(삼양라면 1만8320원, 신라면 3170원)보다도 낮다.

시장 상인들이 이처럼 싼 값에 팔 수 있는 이유는 대부분 식품업체 대리점 영업사원들의 덤핑 제품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한 상점 주인은 "대리점 영업사원들이 매출 목표를 맞추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 물건을 싸게 판다"며 "월말과 연말, 식품업체의 가격인상 전, 재고물량을 처리하려는 영업사원들로 시장에 많은 물건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대리점 영업사원들은 월말이나 연말을 기준으로 매출 목표를 할당받는다. 그들은 일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손해를 보면서 땡처리 시장에 제품을 판다. 이른바 '밀어내기'로 불리는 영업 방식이다. 영업사원들은 매출 목표를 달성해 받는 성과급으로 손해분을 메운다.

이처럼 영업사원들로부터 싸게 공급받은 물건은 주로 동네 슈퍼마켓 상인들에게 판매된다. 땡처리 시장에서 제품을 들여오는 슈퍼마켓의 경우 정가의 '반값'으로 팔아도 손해를 보지 않는 셈이다.

실제 이날 서울 동대문구의 한 슈퍼마켓에서는 삼양라면 40개들이 한 박스를 권장소비자가의 절반 수준인 1만4000원에 팔았다. 슈퍼마켓 주인은 "손해를 보고 장사하는 사람은 없다"며 "대형마트로 가는 손님을 끌어모으기 위해 청량리 땡처리 시장에서 싼 값에 물건을 사온다"고 말했다.

제품을 저렴한 값에 파는 땡처리 시장은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유통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영호 한경대학교 물류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땡처리 시장의 경우 '무자료 거래'가 주로 이뤄지기 때문에 유통거래 질서를 문란하게 한다"면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제품 등 품질을 보증할 수 없는 제품들이 유통돼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값에 파는 슈퍼마켓에서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가 정상가에 판매하는 상점을 오히려 문제 삼을 가능성도 있다"며 "상점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면 오픈프라이스제가 시행될 당시 일어났던 문제가 재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영업사원들이 '밀어내기'로 제품을 판매하면 유통시장이 왜곡될 수 있다"며 "대리점을 대상으로 밀어내기 자제를 권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강지연 기자 ali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