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 감축에 반평생 헌신…북핵 한반도문제에도 진력
워싱턴 정쟁 심화로 초당적 정치·정책행보 좌초

지난 36년동안 미국 의회 외교를 좌지우지했던 거물 정치인 리처드 루거(80·공화·인디애나) 상원의원의 정치인생이 7선(選) 고지 등정의 초입에서 막을 내렸다.

오는 11월 재선 도전을 위해 치러진 8일(현지시간) 당내 경선에서 루거 의원은 보수성향 티파티 운동의 조직적 지원을 받은 신예 정치인에게 패배했다.

루거 의원은 43세이던 지난 1976년 연방 상원의원에 처음 당선돼 지금까지 6선을 하면서 1985∼87년과 2003∼2007년 두 차례에 걸쳐 상원 외교위원장을 역임한 외교통이다.

상원 의원으로 변신하기 전에는 인디애나폴리스 시장을 지냈다.

외교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핵무기 및 생화학무기 감축에 전력을 기울였던 루거 의원은 1991년 당시 샘 넌 상원의원과 함께 옛 소련의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불능화를 지원하기 위한 `넌-루거법'을 입안한 당사자이기도 하다.

'넌-루거법' 제정후 지금까지 7천500여개 이상의 핵탄두가 불능화됐다.

한반도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90년대 초반 북핵위기가 불거진 이후 고비마다 북핵문제에 대해 온건 대화론에 입각한 정책을 역설하며 미 행정부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쳤다.

상원외교위원장 시절 한국도 방문했다.

2002년 제네바 합의 파기 당시에 루거 의원은 부시 행정부에 미-북 직접대화의 필요성을 주창한 의회내 대표적인 대화론자였다.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보좌관에게 북한 영변 핵시설을 방문토록 지시하고, 2006년에는 북한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해체할 경우 미국-북한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북핵 해법 로드맵' 입법화를 추진하기도 했다.

일찍이 `북한-미얀마 핵협력 커넥션'을 꾸준히 제기하며 북한의 핵확산 문제에도 천착해왔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때마다 미 의회 결의안 발의에 이름을 올리는 등 한반도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기도 했다.

지난 199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 도전했지만 실패했다.

한반도 문제 외에도 마르코스 독재 시절 필리핀 민주화, 남아공 인종분리정책 비판 목소리로 세계 각지의 인권 증진, 민주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공화당임에도 부시 행정부 시절 동맹국과의 협의를 무시한 일방주의·밀어붙이기식 외교를 강력하게 비판하는데 앞장섰고, 민주당과의 협력을 바탕으로 한 초당적 외교에 힘을 기울여와 합리적 정치인이라는 명성을 쌓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핵문제에 관한 한 일찍부터 루거 의원을 멘토로 삼고 경험과 지식을 쌓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지난 2005년 상원 외교위원장이던 루거와 초선 민주당 상원의원이던 오바마는 함께 러시아, 아제르바이잔,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핵시설을 시찰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재래식 무기 감축법안인 '루가-오바마 확산 위협 감축법'을 공동 성안하기도 했다.

공화당이지만 2008년 대선때 오바마 후보의 외교정책을 지지했고, 오바마 행정부 출범 초 국무장관 후보로도 거론됐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 명예 공동위원장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대화와 타협, 중재를 중시하는 초당적 정치, 정책행보로 의회내 명성을 쌓아왔고, 상대당인 민주당 동료로부터도 존경을 받아왔다.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 갈수록 심화된 당파적 대립 환경은 루거 의원을 당내 보수우파인 티파티 그룹이 제거할 핵심 타깃으로 지목하도록 했고, 결국 그는 비타협적 정쟁 문화의 희생자가 된 셈이다.

(워싱턴연합뉴스) 성기홍 특파원 sg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