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트가 대중 해양레포츠로 자리잡기까지 대한요트협회의 숨은 노력은 실로 컸다.

대한요트협회는 33년 전인 1979년 3월17일 출범해 국제요트경기연맹(IYRU)에 76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하면서부터 우리나라에 요트라는 문화를 본격적으로 전파하기 시작했다. 북한이 IYRU에 우리보다 무려 16년 앞선 1963년에 가입했다는 점에서 당시 요트가 우리나라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이런 불모지나 다름없는 척박한 현실에서 요트 저변 확대의 꽃을 피운 장본인은 단연 기업인들이었다.


당시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울산에 설립한 경일요트에서 회사 직원들이 국산1호 요트로 제작된 ‘파랑새호’를 직접 타고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 성공하면서 국민들에게 요트에 대한 관심을 처음으로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요트의 벽은 너무나 높았다. 당시 대한요트협회 초대 회장을 맡았던 고 최형로 톰보이 회장은 스웨덴에서 열린 세계 OK 딩기급 요트선수권대회에서 국내 처음으로 참여했으나 참패를 당하자 “세계 선수들과 현격한 차이를 느꼈다”며 “앞으로 내수면에서 연습하지 말고 바다에서 연습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당시 신문에 적혀 있을 정도다.

2대 회장 이종록 삼익주택 대표, 3대 김철호 명성그룹 회장에 이어 1983년부터 3년여 동안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4대 회장을 맡으면서 요트협회는 왕성한 활력을 보였다. 당시 김 회장은 1985년 아시아 요트 선수권 대회를 국내 처음으로 유치한 데 이어 사비를 털어 경기용 요트 65척을 13개 시·도 협회에 내놓는 등 요트 저변 확대에 열과 성을 다 바쳤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들 역대 회장이 속해 있던 기업들이 하나같이 부도나거나 부실화되면서 협회발전은 정체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혼란 속에 대한요트협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기업인이 바로 2003년 7대 회장으로 취임한 박순호 세정그룹 회장이다. 제일모직 LG패션 등과 함께 국내 5대 패션기업가인 박 회장은 2009년 세계요트연맹 연차회의 부산 유치와 2012년 런던올림픽 요트대회 출전권 획득 등 이전과는 다른 공격적인 활약상을 보이면서 대한요트협회는 세계적인 요트연맹으로서의 새로운 입지를 다지게 된다.

코리아컵 국제요트대회, 이순신 장군배 국제요트대회 등 우리나라에 크고 작은 요트대회를 연간 30여건 이상 유치한 것도 놀랄 만한 성과로 손꼽힌다. 그는 여기에 연간 4억원씩 협회 기금 출연과 함께 세정그룹 아웃도어 브랜드인 ‘센터폴’을 공식 후원기업으로 지원하는 등 요트협회에 뜨거운 열정을 보이고 있다.

이런 저변 확대에 대한 공로로 그는 2009년 8대 회장에 만장일치로 재추대됐다.

대한요트협회는 올 들어 요트 저변 확대를 위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국경제신문과의 업무협약이다. 박 회장은 “명색이 조선과 IT기술 세계 1위, 자동차 생산 세계 5위인 우리나라가 요트산업 불모지라는 소리를 언제까지 들어야 하느냐”며 “요트산업 육성을 위해 한국경제신문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한요트협회는 또 일반 운전 면허 시험처럼 40시간 교육을 받으면 요트 조정면허를 줄 수 있는 공인 요트교육기관 22곳도 인증, 요트전문가 양성기반을 탄탄히 구축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