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진옥섭 씨…좌판서 채소 팔아 아들 연극 뒷바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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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배삼식 씨 마흔에 교수 임용
“철들고 나서 어머니 앞에서 노래를 불러드린 적이 없어요. 서툴지만 어머니께 노래 한 곡 불러드리겠습니다.”
마흔이 넘은 아들이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자 객석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대니보이 오 대니보이 아이러브 유 소….” 주인공은 극작가 배삼식 씨(42·오른쪽).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7일 열린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에서 그는 칠순을 앞둔 노모를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미세한 떨림이 섞인 목소리에선 고생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애잔하게 묻어났다. 관객들이 연방 눈물을 훔쳤다.
올해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씨의 어머니 진옥섭 씨(69·왼쪽)는 시장 좌판에서 채소와 과일을 팔아 자식들을 키웠다. “삼식이가 세 살쯤 됐을 거예요. 단속이 어찌나 심했던지 아이를 업고 도망다니면서 장사를 해야 했죠.”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터라 진씨 혼자 생계를 꾸리던 때였다.
그래도 자식들은 남 부럽지 않은 자랑거리였다. 전주에서 소문난 인재였던 아들은 뒷바라지 없이도 서울대에 들어갔다. 빠듯한 살림을 쪼개 등록금을 댔지만 이번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가 극작을 배우겠다고 했다. “속이 많이 상했어요. 그렇지만 꼭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어요. 그냥 묵묵히 기다렸죠.” 당시 아들의 나이 서른이었다.
연극에 빠진 아들은 10년을 무대에서 보냈다. 대산문학상, 동아연극상 등을 휩쓸며 인정받았지만 불안한 생계는 여전했다. 배씨는 “속으론 면목이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믿어주고 기다려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셨죠. 저에게 삶의 무게를 강요하셨다면 연극을 계속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는 2년 전 처음으로 ‘취직’을 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 “모든 게 풍족해져서 너무 행복하다”는 노모는 극작가와 교수 중 어느 직업이 더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제자들 양성하는 게 더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아들 덕분에 장한 어머니상까지 받게 됐네요. 이런 자리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가난 속에서 힘들게 아들을 키운 보람이 있네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
마흔이 넘은 아들이 기타를 메고 노래를 부르자 객석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대니보이 오 대니보이 아이러브 유 소….” 주인공은 극작가 배삼식 씨(42·오른쪽).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7일 열린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시상식에서 그는 칠순을 앞둔 노모를 위해 마이크를 들었다. 미세한 떨림이 섞인 목소리에선 고생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애잔하게 묻어났다. 관객들이 연방 눈물을 훔쳤다.
올해 장한 어머니상 수상자로 선정된 배씨의 어머니 진옥섭 씨(69·왼쪽)는 시장 좌판에서 채소와 과일을 팔아 자식들을 키웠다. “삼식이가 세 살쯤 됐을 거예요. 단속이 어찌나 심했던지 아이를 업고 도망다니면서 장사를 해야 했죠.” 남편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터라 진씨 혼자 생계를 꾸리던 때였다.
그래도 자식들은 남 부럽지 않은 자랑거리였다. 전주에서 소문난 인재였던 아들은 뒷바라지 없이도 서울대에 들어갔다. 빠듯한 살림을 쪼개 등록금을 댔지만 이번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가 극작을 배우겠다고 했다. “속이 많이 상했어요. 그렇지만 꼭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리겠어요. 그냥 묵묵히 기다렸죠.” 당시 아들의 나이 서른이었다.
연극에 빠진 아들은 10년을 무대에서 보냈다. 대산문학상, 동아연극상 등을 휩쓸며 인정받았지만 불안한 생계는 여전했다. 배씨는 “속으론 면목이 없었지만 어머니께서 믿어주고 기다려주셨다”고 했다.
“그렇게 고생하면서도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셨죠. 저에게 삶의 무게를 강요하셨다면 연극을 계속하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는 2년 전 처음으로 ‘취직’을 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 “모든 게 풍족해져서 너무 행복하다”는 노모는 극작가와 교수 중 어느 직업이 더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제자들 양성하는 게 더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아들 덕분에 장한 어머니상까지 받게 됐네요. 이런 자리가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가난 속에서 힘들게 아들을 키운 보람이 있네요.”
김인선 기자 ind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