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군 재대 후 아르바이트로 전시·박람회 처음 접해
-국내 대표적인 PEO(전문전시주최자)로 자리매김


"7~80년대 어디 가서 '전시산업에 종사합니다.'라고 얘기하면 10명중 8~9명은 '전쟁이요?, 군수물자요?, 무기 관련된 일 인가요?' 식의 반응이었습니다. 민간기업이든 정부든 비슷한 반응 이었죠.(웃음)"

국내 마이스산업의 전시분야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김충진 한국이앤엑스 사장이 35년 전, 처음 전시회 업체유치를 위해 영업을 다니던 시절의 에피소드를 털어놓았다.

지난 2월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국내 최대의 의료기기, 병원설비 전시회가 열렸다. 코엑스(COEX) 전시장 4개 홀 전관에 걸쳐 30개국 978개 기업의 부스가 차려졌고 59,758명의 국내·외 바이어가 참여한 국내에선 보기 드문 메머드급 행사라는 평을 이끌었다.

1980년, 국내 최초로 열린 국제 의료기기·병원설비 전시회인 KIMES(키메스)는 김충진 사장의 수작으로 꼽힌다. 당시만해도 변변한 의료장비 하나 갖추지 않은 병원이 태반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첫 개최 당시 국내 의료기기 생산업체는 고작 3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전시공간은 외국 기업의 제품으로 이뤄졌을 정도. 더욱이 의료계에 만연돼 있던 "의술은 인술이다" 라는 배타적 분위기까지 더해져 누가 봐도 성공하기 어려워 보였던게 사실.

하지만 30년이 지난 2012년, 의료기기 산업은 어느덧 대한민국의 신 성장동력 유망 산업이 되었고 유럽, 미국 등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을 상대로 하는 대표적인 수출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KIMES(키메스)가 해당분야 세계 7위의 전문 전시회로 성장하게 된 이유도 이유 무관치 않다.

국내 전시분야 1세대로 지난 30여 년간 의료(키메스,KIMES), 플라스틱 고무(코플라스,KOPLAS), 방송 음향 조명(코바, KOBA), 인쇄산업(키페스,KIPES)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문분야 산업전시로 마이스업계의 질적 성장에 기여하고 있는 김충진 한국이앤엑스 사장을 삼성동 무역센터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르바이트생에서 국내 대표 전시주최사 CEO로 변신

김 사장이 처음 전시회를 접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군복무를 마치고 편입을 준비하던 20대 중반의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주위의 권유로 전시회 현장관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전시회에서 처음 경험하게 된 화려한 이벤트에 매료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산업을 키우는 마케팅 툴로써 전시회가 가진 매력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동경과 도전정신이 그를 전시업계로 빨아들였다.

초창기 국내에는 전시회 개최를 위해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충분하지 않았다. 일본에 있는 파트너에게 도움을 구하기도 하고 직접 연구하고 체험하면서 전시회 기획과 운영의 노하우를 쌓았다. 이런 노력의 과정을 거쳐 김 사장은 1998년 지금의 한국이앤엑스를 설립하게 되었다.

인생 최고의 선택이 전시분야 일을 시작한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에게도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다.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기업들이 예산절감을 위해 홍보비를 줄이면서 전시회가 1/4로 줄어들었던 것.

전시회에 꾸준히 참가하던 기업들마저 연이어 참가를 취소했다. 당시 그는 사전에 계약해 놓은 코엑스 전시장 22개실 중 9개실 만 사용하고 나머지 13개실은 위약금을 고스란히 물어야 했다.

행사를 취소해야 하나. 시간이 갈 수록 상심은 깊어졌다. 위기의 순간, 김 사장이 던진 승부수는 '고 앤 올-인(go and all-in)' 이었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적극적인 마케팅과 홍보에 모든 것을 걸었다. 승부수를 띄운 셈이다.

당시 국내 최초로 전시회 광고가 TV전파를 타게 된 역사적인 사건(?)도 김 사장이 벌인 승부 때문이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만 알고 있는 전설로 통한다. IMF로 국가경제는 뒤 숭숭 했지만 TV광고가 나가고 마케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자 분위기는 반전됐다.

결과는 대성공.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새로운 정보에 목 말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전시회를 방문했고 늘어난 관람객 수는 자연스럽게 참가기업들이 출품효과를 높이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 사장은 관련 기업들의 강한 신뢰를 바탕으로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다고 회고했다.


주최자 협동조합 등 설빕, 민관 협력을 통한 산업 발전에 앞장서

김 사장은 국내 전시업계에서 20년 이상의 대형 전시회를 개최하는 대표적인 민간 전시주최자로도 유명하지만 국내 전시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는 현재 한국전시주최자협회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시업협동조합의 초대 이사장을 역임했다.

IMF 위기를 겪은 90년대 후반 구심점 없이 개별적으로 활동하던 전시주최자들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조합 설립에 앞장섰다. 당시 그는 회원 사 간에 교류와 협력은 물론 선의의 경쟁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마이스산업의 커다란 두 축은 국제회의와 전시,박람회 이다. 그렇다면 국내 마이스산업이 지속성장 가능하기 위해서 전시산업 분야에 민간과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그는 국내 전시산업은 물론 마이스산업이 지닌 어려운 여건으로 극동지역에 위치에 해외로부터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리적 여건과 언어장벽을 꼽았다.

특히 전시분야에서는 유사행사의 난립을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지적했다. 매년 국내에서 500여건에 이르는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이제는 전시산업 육성의 방향이 양적 팽창에서 질적 향상으로 바뀌어야 할 시기라는 것이다.

전시회는 다양한 제품들을 보여주고 소비자에게 선택의 기회를 줘야 하는 일반 제품과는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유사행사의 난립으로 기업의 역량이 분산됨으로써 오히려 산업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

전시회가 관련 산업발전에 기여한다는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제 집중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정부와 민간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화, 전문화, 브랜드화는 '선택'아닌 '필수'

김 사장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내의 산업 구조를 고려할 때 전시회의 국제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 세계 각지에서 온 바이어의 발길을 국내로 돌리는 것이 필요한데, 해결책 중 하나로 국내 전시회에 해외 기업의 참여를 늘리는 것을 제시했다.

또 그는 근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급속한 경제성장세를 바탕으로 전시산업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며 국내 전시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방안으로 전시회의 전문화를 제시했다.

이제 전시회도 최신 제품과 기술을 선보이고 산업 트랜드를 제시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고 그래야만 기업과 바이어가 전시회를 비즈니스에 꼭 필요한 수단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 전시 주최자(PEO: Professional Exhibition Organizer)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PEO를 기업과 바이어,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비즈니스의 가능성을 제공해 주는 기회제공자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위대한 발명품과 최신기술이 접목된 제품도 그 우수성을 인정하고 찾는 사람이 없다면 무용지물인 것처럼 제품을 어떤 식으로 소개하고 보여주는가에 따라서 제품의 가치가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같은 제품이라도 동네 슈퍼 한 켠의 덤핑 판매대에 올려놓느냐 명품 백화점의 밝은 조명아래 전시되느냐에 따라 소비자의 평가는 달라진다는 얘기다.

김 사장은 인터뷰 당일에도 이달 29일부터 열리는 국제 방송·음향·조명기기 전시회(KOBA) 준비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 한 명의 전시주최자로서 해외로부터 기업과 바이어들이 모여드는 전시회를 통해서 우리 기업들이 나가서 무역하는 것이 아니라 안방에서 효율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국내 전시업계에서 오직 신뢰를 바탕으로 40년 가까이를 끊임없이 고민해온 김충진 대표. 최근 국내 마이스산업에 대한 정부와 민간의 관심이 높아만 지고 있다. 굴뚝 없는 고부가가치에 대한 진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김 사장의 그간의 노력이 남다른 의미를 지닌 이유다.

한경닷컴 유정우 기자 see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