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를 앓고 있는 60대 A씨(강원도 춘천). 최근 집 근처 병원을 찾아 ‘만성질환관리’를 신청했지만 헛수고였다. 담당의사가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신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만성질환관리제는 당뇨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는 환자가 동네 병원 한 곳을 정해 꾸준히 치료를 받으면 기본 진찰료 중 환자 본인 부담금을 10%(1회 진료당 920원) 깎아주는 제도다.

정부가 지난달부터 전국 2만5000여개 동네 병원을 대상으로 만성질환관리제를 도입했지만 현장에서는 A씨의 경우처럼 아직도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 특히 대한의사협회가 조직적으로 불참 의사를 밝히면서 정부 의료 정책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 간 힘겨루기 양상마저 빚어지고 있다.

노환규 의사협회 신임 회장(사진)은 2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만성질환관리제 불참을 위해 더욱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말했다. 의협 측은 환자 개인정보 누출 위험, 국가 의료기관인 보건소와의 경쟁 심화 등을문제점으로 꼽고 있다. 동네 병원이 관리하는 환자 정보를 보건소에 넘겨야 하는데 이 경우 보건소와 동네 병원이 직접 경쟁하면서 병원 경영 여건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의협 측은 또 의료분쟁조정중재원이 전문가를 구성해 환자와 의사의 의료 분쟁을 조정·중재할 수 있는 의료분쟁조정제도에 대해서도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의료 분쟁 조정 절차가 시작되려면 환자뿐 아니라 해당 의사도 참여해야 하는데 불참 선언으로 인해 제도 운영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의협 측은 “의사들의 과실이 없는 분만사고에 대해서도 보상해야 하는 등 독소 조항을 담고 있다”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복지부는 기존 정책을 예정대로 강행한다는 방침이다. 만성질환관리제와 의료분쟁조정제도 모두 전임 집행부의 동의를 거쳐 시행한 제도라는 이유에서다. 환자단체도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공동대표는 “의사협회의 만성질환관리제 불참은 환자의 권익을 생각하지 않고 의사들의 이익만을 고려한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일선 의사들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한 동네 병원 의사는 “의사협회 집행부가 반대 방침을 내려보낸 상황에서 정부 정책에 동조하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환자들의 요구를 거부하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