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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포럼] 高유가, 약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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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기름값이 많이 올랐는데도 차량이 줄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듣게 되는 요즘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과연 그럴까” 또는 “사실이라면 도대체 왜 그럴까”하는 생각을 누구나 한번쯤 했을 것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휘발유의 상대가격이 낮아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고 기름값이 야금야금 올라 내성이 생긴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계를 한번 찾아봤다. 과거 10년간 고속도로 차량통행량과 휘발유 가격 추이다. 상식대로라면 유가가 오르면 차량 이용은 줄고 반대로 기름값이 싸지면 차량 이용은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상식은 완전히 틀렸다. 2002년부터 2011년까지 10년간 월별 고속도로 통행량과 휘발유 가격 추이를 보면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없다. 둘다 단기 등락은 있지만 장기적인 상승커브를 그릴 뿐, 유가가 쌀 때 차량통행이 늘어난 흔적은 거의 찾기 힘들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유가와 교통량은 거의 무관

    재미있는 건 차량통행량이 유가와는 무관하지만 이상하리 만큼 매년 똑같은 패턴을 보인다는 점이다. 월별 통행량을 선 그래프로 그리면 뾰족한 봉우리가 세 개인 산 모양이 된다. 세 개의 봉우리는 5월, 8월, 10월이다. 5, 10월은 봄 가을 행락철이고 8월은 여름 휴가철이다. 산의 양쪽 끝 저점은 언제나 2월이다. 이런 패턴은 한 해도 예외가 없다. 기름값이 싸든 비싸든, 차량 이용 행태는 계절에 따라 매년 같은 패턴을 반복한다는 얘기다. 실제 2008년 7월 ℓ당 평균 1922원까지 올랐던 휘발유 가격이 불과 5개월 뒤인 12월에는 1328원까지 급락했지만 같은 기간 차량통행량은 늘기는커녕 9980만대에서 9870만대로 줄었다. 결국 차량운행은 유가보다는 계절에 더 큰 영향을 받으며 이런 현상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리잡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가 또다시 유가대책을 내놨다. 삼성토탈의 정유시장 참여, 주유소 혼합판매 활성화, 석유 전자상거래 확대, 알뜰주유소 확대 및 인센티브 제공 등이 골자다. 삼성토탈 부분을 빼면 1년 전 대책과 별로 달라진 게 없다. 그나마 삼성토탈의 공급량은 소비량의 1~2%에 불과할 것이라고 한다. 이번 대책으로 유가가 내려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이유다.

    사실 국제 유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상황에서 원유를 100% 수입하는 우리나라 사정상, 정부가 유가를 때려 잡는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만약 정부 유가대책의 약발이 먹혔다면 1년 전 ℓ당 1945원대였던 보통휘발유 값이 최근 2060원 언저리까지 오른 걸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무리 정유사와 주유소를 뒤지고 알뜰주유소를 만들어도 소용없다는 건 이미 결론이 난 것이나 다름 없다. 정부 역시 이를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기름값이 묘하다”거나 “정유 시장의 공급이 과점 형태여서 고유가가 계속되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는 등의 대통령의 지적이 계속 나오니 떠밀리듯 입에 발린 대책만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격통제보다 수요억제 필요해

    그러나 고유가 시대에 정부가 기름값을 억누르기만 하는 게 과연 미덕인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에너지 과소비 국가다. 통계가 말해주듯이 유류 소비는 이제 유가수준에 큰 영향을 받지도 않을 뿐더러 장기적으로는 계속 늘어만 간다. 고유가에도 차가 줄지 않는 건 아직 견딜 만하다는 방증이다. 기름값 통제보다는 수요억제가 필요하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기름값이 비싸야 구조조정도 촉진되고 대체에너지 개발도 더 활기를 띨 수 있다. 어쩌면 더 비싼 유가가 우리에게 약이 될지도 모른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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