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 가지 확실해진 게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미국을 이상적인 국가모델로 바라보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유일한 슈퍼파워로서 미국의 위상도 흔들리는 게 사실이다. 미국의 헤게모니는 다른 국가나 세력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을 밟는 것일까. 그럼 세계를 자신의 패러다임 안에 두고 패권을 행사할 자는 누구일까.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가 이에 대한 답을 내놨다. 신간 《세계는 누가 지배할 것인가》를 통해서다. 아탈리는 ‘세계의 중심’을 둘러싼 쟁패의 역사와 세계가 직면하게 될 문제, 그에 따른 미래 세계의 전개 방향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2030년 헤게모니 지형도를 ‘다중심적인 혼돈’으로 요약한다. 미국과 중국이 구성하는 주요 2개국(G2)이 점차 부상하겠다면서도 세계를 다스릴 수는 없을 것으로 진단한다. 지구촌 규모의 문제 해결을 떠맡을 주체가 없는 세상이 전개될 것이란 뜻이다.

그는 미국이 장기적으로 상대적인 쇠퇴 징후를 보이겠지만 당분간은 헤게모니를 유지할 것으로 전망한다. 슈퍼파워로서 미국을 대체할 후보로는 중국이 유력한데 역량은 떨어진다는 시각이다. 중국은 한 번도 보편적인 사명을 가진 적이 없으며, 국내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힘에 부칠 것이란 설명이다. 아탈리는 “‘다중심적인 혼돈’은 ‘시장의 세계정부’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예견한다. 여러 나라, 지역의 시장경제가 통합되는 게 아니라 국가가 존재하지 않는 하나의 순수하고 완벽한 시장경제가 형성될 것”이라며 그 파장을 우려한다. 통제력을 갖춘 ‘국가의 세계화’가 없는 ‘시장의 세계화’는 수요 부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며, 대량 실업과 독점 또한 촉진될 것이란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리스크를 관리하는 기업이 복지국가를 대체하게 돼 특히 보험회사들이 세계의 주인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는다. 사람들의 여가시간 대부분을 빼앗을 오락산업 기업들의 부상도 예상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통제력을 잃은 시장의 세계화가 낳을 부작용을 걱정한다. 시장이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개인의 부채’를 늘리는 과정에서 금융거품이 더 자주 발생하리라고 본다. 범죄적 경제활동 또한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금융위기 이후 6조달러나 풀린 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위험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탈리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 지구 전체의 이익을 돌볼 ‘세계정부’의 수립을 제안한다. 각각의 국가가 하나의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형태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확립이 기본 조건이다. 그는 “민주주의만이 인류 생존을 담보해줄 수 있으며, 효율적이고 정당한 시장은 법치주의를 통해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