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정부 예산이 투입되는 법안을 발의하면서 소요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국경제신문이 최근 발의된 100건의 의원입법안을 분석한 결과 비용 추계서를 첨부한 법안은 단 한건에 불과했다. 법안에 비용추계서를 첨부하는 것이 의무사항이지만 기술적으로 비용 산정이 어려운 경우 내지 않아도 된다는 예외조항을 악용해 벌어지는 일이다. 국회가 소요 예산을 산출할 수 있게 지원할 목적으로 2005년부터 설치돼 운영되고 있는 예산정책처는 무용지물이 돼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의원들은 각종 보상법안과 복지 확대를 내용으로 한 법안들을 경쟁적으로 제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 법안은 대부분 많은 예산을 필요로 한다. 소요 예산이 빠지면 법안의 현실성이나 타당성에 대한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 리 없다. 실제 영유아보육법 아동복지법 노인장기요양보험법 노인복지법 등 최근 발의된 복지관련 법안들이 예외조항을 활용해 비용 산정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이런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국가재정의 건전성은 무너지고 법률과 예산의 괴리가 확대될 것은 뻔하다. 법안 발의 이전단계에서 정부와 사전에 협의하거나 최소한의 비용을 추계한 뒤 무리한 법안이라고 판단되면 입법자체를 철회하는 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입법권은 국회의원에게 권리인 동시에 의무이자 책임이다. 국민의 요구를 국가 정책으로 실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그렇지만 부실한 의원입법은 갈수록 증가한다. 의원들이 발의한 입법건수는 15대 국회 때 2670건이었던 것이 18대에는 1만4723건으로 급증했다. 한건주의에 급급해 국민의 세금이 들어가는 법안을 만들면서도 비용이 얼마만큼 들어가는지 계산하지 않는다는 것은 위선의 극치요 직무 유기다. 19대 국회는 초선의원의 비율이 49.4%나 된다고 한다. 이들 새내기 의원은 의욕적으로 입법권을 행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의욕의 과잉은 부실 법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엉망인 18대 국회였다. 19대 의원들은 과거와 단절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