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의 경쟁자는 뚜레쥬르인가? 아니다. 폭발하는 전문 커피점이다. 커피점들이 빵과 과자, 샐러드를 함께 팔면서 고급 빵 시장은 이미 레드오션이다. 매장 수 3000여개인 파리바게뜨다. 각종 브랜드의 커피 매장 수는 1만개다. 앉아서 죽지 않으려면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인가. 당신이 CEO라면? 파리바게뜨가 내놓은 사활적 전략이 바로 파리바게뜨 ‘카페’다. 빵집 인테리어를 교체하고 매장을 넓히면서 고급 커피도 함께 판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새로운 구상은 언제나 기득권과 충돌한다. 바게뜨냐 카페냐를 놓고 SPC그룹 안에서도 치열한 싸움이 일어난다. 계획을 세우는 본사와 인테리어 비용을 대야 하는 가맹점주의 갈등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게 비즈니스의 맨얼굴이다. 어떤 기업에서든 비슷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기존 제품을 지지하는 그룹과 새로운 전략을 요구하는 세력은 전쟁을 방불하는 격렬한 싸움을 매번 치러야 한다. 대부분은 기득권이 승리한다. 그것이 우리가 스티브 잡스와 아이폰을 자주 볼 수 없는 진짜 이유다. 그런데 이 치열한 내부 협상에 갑자기 정부가 뛰어든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주 공정위는 제빵 분야 프랜차이즈 업계에 적용한다는 소위 모범 기준을 내놓았다. 인테리어 비용 부담에 대한 규칙을 비롯해 점포 간 이격 거리까지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각종 밀고당기는 세부 협상을 공정위가 정한 기준에 따르라는 것이었다. 실로 착하다. 문제는 선한 발상의 대부분이 황당한 결과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장사에는 분쟁이 따르고 계약으로 해결되지 않으면 법정으로 달려가는 것이 자유 민주주의와 법치의 기본 질서다. 공정위는 사법부가 아닌 행정부다. 당연히 계약의 자유를 부정하는 월권이요 남용이다. 유사한 사건의 대법원 판례도 있다.

모범기준은 외형상 가맹점주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결과가 어떨지는 아직 모른다. 프랜차이즈는 지식의 비대칭을 업의 본질로 하는 제약산업도 금융산업도 아니다. 상인들 간의 자유 계약이다. 가맹점주 쪽이 선택권을 갖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다. 공정위에 등록된 가맹점 브랜드는 2900여개. 대부분의 브랜드는 단 한 명의 자영업 가맹점주도 구하지 못한다. 잘나가던 안동찜닭이며 불닭 등 수많은 브랜드가 그렇고 욱일승천하던 BBQ도 지금은 시장을 사수하기에 급급하다.

눈에 보이는 경쟁에서는 파리바게뜨가 갑(甲)이지만 보이지 않는 시장에서는 누가 갑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시장상황이 결정하는 것이지 시장구조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힘의 관계는 항상 변한다. 상인들의 계약이란 위험을 거래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지금도 파리바게뜨 가맹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기회를 못 가질수도 있다. 아니 공정위 덕분에 카페 전략에서 실패한 파리바게뜨 본사가 위기로 직행할지도 모른다.

동반성장위원회의 이익공유 주장도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천동설적 시각이다. 경쟁은 중소업자들 간에서 일어나는 것이지 대기업 甲과 중소기업 乙사이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생산원가가 개당 100원인 A와, 개당 101원인 B가 납품권을 놓고 싸우면 당연히 A가 승리하고 또 그래야 한다. B는 절치부심해서 이제는 개당 98원에 동일한 제품을 생산하는 일대 혁신을 만들어 냈다. 드디어 B가 납품권을 따낼 차례가 온 것이다. 그런데 이때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 甲의 이익 중 3원을 A와 공유하라고 하면 다음 입찰에서 A는 97원을 써내면서 혁신 기업인 B의 98원을 1원 차이로 축출하게 된다. 비경쟁 혹은 반경쟁은 이렇게 시장의 혁신을 파괴한다. 미쉐린은 재생타이어를 만들어도 되고 한국타이어는 안 된다는 식이다. 이것이 정운찬 동반성장위가 1년 내내 한 일이다.

증세론도 마찬가지다. 세금을 빼앗아갔기 때문에 사라지는 복지는 안중에도 없고 정부지출로 쥐꼬리만큼 늘어난 복지만 중복 계산하는 것이 정치권의 계산법이다. 사라지는 복지를 지적해주면 부자들의 복지 말이냐고 나꼼수처럼 되물어 온다. 보이지 않는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이런 천동설 주의자들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정규재 논설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