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실물 없이 번호만으로 결제가 가능한 기업구매전용카드로 ‘카드깡’을 했어도 여신전문금융업법(여신법) 위반 행위는 아니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카드 번호만 있는 기업구매전용카드는 여신법이 규제하는 신용카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법원은 기업구매전용카드 카드깡은 회사에 대한 사기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결국 유죄를 선고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최규홍)는 기업구매전용카드로 허위 결제를 한 뒤 해당 회사에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박모씨(56)에 대해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고 15일 밝혔다.

재판부는 박씨의 여신법 위반 혐의에 대해 “여신법상 신용카드로 인정되려면 실물 카드와 같은 증표가 있어야 한다”며 “기업구매전용카드는 카드 번호만 있어 여신법상 신용카드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박씨에게 여신법 위반 혐의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2005년 개정된 여신법에 ‘카드거래 성립만으로 신용카드 부정 사용을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이 들어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신법이 규정하는 신용카드 범위가 넓어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사기 혐의에 대해서 재판부는 “박씨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부풀려 기업구매전용카드로 결제 처리한 다음 회사에 이 비용을 청구한 행위는 사기죄”라며 “당시 카드 이용대금을 변제할 의사와 능력이 있었고 피해 회사에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었다 해도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결했다.

A, B 두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박씨는 이중 A회사의 운영자금이 부족해지자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A사와 B사 사이 매출을 부풀려 결제한 뒤 생긴 돈을 빼돌려 A사의 운영자금으로 유용하는 25억여원의 ‘카드깡’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도 사기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