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성 확 떨어진 '갤럭시노트' 이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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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노트, 새로운 생태계 개척…제품력으로 ‘승부’
“옴니아로 아이폰에 맞서던 3년 전보다 지난해가 더 힘들었어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연구원들의 이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갤럭시S2’를 1500만 대 이상 팔아치우며 애플과 왕좌를 다퉜던 지난해 세간의 부러움을 샀던 이들이다.
지난해 이들에게 떨어진 특명은 삼성전자를 휴대전화 시장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만들라는 것. 애플 뒤만 좇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를 창출해 시장을 휘어잡으라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막연했다. 풀어보면 애플이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진화시킨 것 이상의 큰일을 내 보라는 뜻인데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조차 감을 잡기 어려웠다.
애니콜 브랜드로 일반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한 시절부터 애플을 위협하는 패스트 팔로워로 불릴 때에도 이들의 주 종목은 첨단 사양 갖추기였다. 제품을 얇고 가볍게 만들면서 각종 기술을 무더기로 탑재, 경쟁사의 기를 죽이는 데 익숙했었다. 스마트폰 판은 애플이 깔았지만 사양만 보면 삼성전자가 갤럭시S 출시 후 앞섰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삼성전자에 ‘카피캣(Copycat)’이라는 독설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승리가 눈앞이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그러자 새로운 고민이 떠올랐다. 듀얼코어를 쿼드코어로, 두께는 더 얇게, 이렇게 사양만 올려 가면 뭐가 남을 것인가. 애플처럼 퍼스트 무버가 되는 길은 결코 아니었다. 욕심이라면 욕심이지만 애플이 그랬듯 새로운 판을 만들고 싶었다고 삼성전자 임원들은 소회한다. 그 판에서 애플이 삼성전자를 힘들게 쫓아오는 달콤한 꿈도 꿨다.
반대 여론 속 개발 나서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택한 카드가 바로 ‘스마트폰 노트’다. 필기 스마트폰을 틈새시장용 제품이 아니라 거대한 생태계로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치 스포츠 종목을 새로 만들어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노리는 심정이었다. ‘스마트폰 노트’ 시나리오가 사내에 알려지자 반대 의견들이 거세게 나왔다.
일부 마니아 공략이라면 모를까 필기가 대세가 될 수 없다는 직언들이 임원들 메일함에 쌓여갔다. 반대 근거는 충분했다. 필기를 하려면 화면 크기가 최소 5인치는 돼야 하는데 스마트폰 휴대성이 확 줄어든다. 미국 ‘델(Dell)’이 2010년 야심차게 내놓은 5인치 스마트폰 ‘스트릭’이 한국과 해외에서 모두 참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한 삼성전자 임원은 “회사가 엉뚱한 실험을 한다고 생각해 걱정이 컸었다”며 “스트릭의 실패를 의식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내가 어수선해지자 무선사업부를 총괄하는 신종균 사장이 정리에 들어갔다. 직원들에게 그는 “앞으로 스마트 기기는 펜 기술을 탑재한 것과 그 외로 나뉠 것이다. 단호하게 말해 전자펜 방식 스마트 기기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무선사업부 연구원들은 ‘스마트폰 노트’ 개발에 나섰다. 현재의 모델명 ‘갤럭시 노트’의 출발점이었다. 연구원들은 큰 화면에 따른 휴대성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두께와 무게 줄이기에 우선 주력했다. 제품 안에 휴대용 펜까지 넣으려니 자리가 좁아터졌지만 악으로 일하니 가닥이 잡혔다. 몇 달이 걸려 5.3인치 대화면에 9.65mm 두께, 182g 무게의 시안을 만들어 내자 분위기가 밝아졌다.
전작 갤럭시S2(8.9mm 두께, 120g 무게) 대비 두께를 줄였고 무게가 늘었어도 불편한 수준은 아니었다. 제품을 들어보니 어색하지 않자 미소가 나왔다. 전자펜은 일본 와콤의 제품이다. 향후 자체 개발에 나서겠지만 일단은 품질이 검증된 기술을 들여와 빨리 데뷔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현존 필기 인식 기술은 와콤이 최고라고 임원들이 판단했다.
드디어 대망의 데뷔전.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유럽을 시작으로 갤럭시 노트 출시 행사를 줄줄이 열었다. 현지 화가들을 영입, 갤럭시 노트로 얼굴을 그려주는 이벤트에 인파가 몰렸다. 이를 지켜보는 삼성전자 임원들의 심정은 한마디로 조마조마. 날마다 판매량 성적을 체크하며 ‘대박’이 나길 기다렸다.
결국 갤럭시 노트를 출시한 지 두 달여가 지난 지난해 12월 말. 자랑할 만한 판매량 성적표가 나왔다. 갤럭시 노트 판매량 100만 대 돌파 소식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뜻도 자신 있게 내비쳤다. 당시 삼성전자는 “생태계 창출자로서의 입지를 확보했다”는 표현을 공식 보도 자료에 명시했다. ‘뛰어난 기능으로 몇 대가 팔렸다’가 핵심이었던 과거 자료들에서는 찾기 힘든 말이다.
해외 미디어의 호평, 마케팅 총력전도
판매량에 탄력이 붙자 소비자들은 지갑을 더 열기 시작했다. 출시 5개월 만인 지난 3월 갤럭시 노트는 누적 판매량 500만 대라는 대기록을 썼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중국·프랑스·스페인 등에서 애플 아이폰을 밀어내고 스마트폰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해외 미디어와 소비자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갤럭시 노트는 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네덜란드 등 유럽 4개국 소비자 연맹지에서 실시한 스마트폰 성능 평가에서 터치스크린, 통화 품질, 배터리 지속 시간, 사진 품질 등의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큰 화면과 필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쏙 들어갔다.
마케팅 총력전도 갤럭시 노트의 인기를 이끌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국 슈퍼볼 경기에 갤럭시 노트 광고를 띄웠다. 광고 시간 90초에 1800만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지만 슈퍼볼 최고 광고를 뽑는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새로운 ‘필기 생태계’ 창출 계획이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경쟁사 LG전자도 5인치 화면에 필기 기능을 탑재한 ‘옵티머스 뷰’를 지난 3월 출시, 생태계에 구성원으로 뛰어들었다. 경쟁 제품이라는 거부감보다 생태계가 자라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삼성전자 임원들은 설명한다. 신 사장은 “필기가 가능한 스마트 기기라는 새로운 생태계가 이미 생겨난 것”이라며 “올해 안에 갤럭시 노트 판매량 1000만 대 이상을 달성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갤럭시 노트와 옵티머스 뷰만으로 생태계 대세론을 논하기는 이르다. 다른 경쟁사들도 이와 관련해 말을 아끼며 시장을 관망하는 모습이다. 필기 기능을 탑재한 차기 제품들의 역할이 큰 이유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10.1인치 갤럭시 노트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제품 공개 행사는 이미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에서 열었다. 기존 갤럭시 노트에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했다.
끝으로 궁금증 한 가지. 만에 하나 삼성전자의 뜻대로 스마트폰 필기 생태계가 대세가 된다면 애플은 어떻게 움직일까. 잡스가 생전에 “전자펜 방식 필기는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기에 더욱 궁금하다. 애플이 ‘팔로워’가 된다면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보기술(IT)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할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김태정 지디넷코리아 기자 tjkim@zdnet.co.kr
“옴니아로 아이폰에 맞서던 3년 전보다 지난해가 더 힘들었어요.”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연구원들의 이 말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갤럭시S2’를 1500만 대 이상 팔아치우며 애플과 왕좌를 다퉜던 지난해 세간의 부러움을 샀던 이들이다.
지난해 이들에게 떨어진 특명은 삼성전자를 휴대전화 시장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만들라는 것. 애플 뒤만 좇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아니라 새로운 생태계를 창출해 시장을 휘어잡으라는 소리였다. 말 그대로 막연했다. 풀어보면 애플이 휴대전화를 스마트폰으로 진화시킨 것 이상의 큰일을 내 보라는 뜻인데 어디서부터 뭘 시작해야 할지조차 감을 잡기 어려웠다.
애니콜 브랜드로 일반 휴대전화 시장을 장악한 시절부터 애플을 위협하는 패스트 팔로워로 불릴 때에도 이들의 주 종목은 첨단 사양 갖추기였다. 제품을 얇고 가볍게 만들면서 각종 기술을 무더기로 탑재, 경쟁사의 기를 죽이는 데 익숙했었다. 스마트폰 판은 애플이 깔았지만 사양만 보면 삼성전자가 갤럭시S 출시 후 앞섰다는 게 대부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 고인이 된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가 삼성전자에 ‘카피캣(Copycat)’이라는 독설을 쏟아낸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승리가 눈앞이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그러자 새로운 고민이 떠올랐다. 듀얼코어를 쿼드코어로, 두께는 더 얇게, 이렇게 사양만 올려 가면 뭐가 남을 것인가. 애플처럼 퍼스트 무버가 되는 길은 결코 아니었다. 욕심이라면 욕심이지만 애플이 그랬듯 새로운 판을 만들고 싶었다고 삼성전자 임원들은 소회한다. 그 판에서 애플이 삼성전자를 힘들게 쫓아오는 달콤한 꿈도 꿨다.
반대 여론 속 개발 나서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삼성전자가 택한 카드가 바로 ‘스마트폰 노트’다. 필기 스마트폰을 틈새시장용 제품이 아니라 거대한 생태계로 만들기로 의견을 모았다. 마치 스포츠 종목을 새로 만들어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을 노리는 심정이었다. ‘스마트폰 노트’ 시나리오가 사내에 알려지자 반대 의견들이 거세게 나왔다.
일부 마니아 공략이라면 모를까 필기가 대세가 될 수 없다는 직언들이 임원들 메일함에 쌓여갔다. 반대 근거는 충분했다. 필기를 하려면 화면 크기가 최소 5인치는 돼야 하는데 스마트폰 휴대성이 확 줄어든다. 미국 ‘델(Dell)’이 2010년 야심차게 내놓은 5인치 스마트폰 ‘스트릭’이 한국과 해외에서 모두 참패한 것도 이 때문이다. 당시 한 삼성전자 임원은 “회사가 엉뚱한 실험을 한다고 생각해 걱정이 컸었다”며 “스트릭의 실패를 의식했던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내가 어수선해지자 무선사업부를 총괄하는 신종균 사장이 정리에 들어갔다. 직원들에게 그는 “앞으로 스마트 기기는 펜 기술을 탑재한 것과 그 외로 나뉠 것이다. 단호하게 말해 전자펜 방식 스마트 기기는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우여곡절 끝에 무선사업부 연구원들은 ‘스마트폰 노트’ 개발에 나섰다. 현재의 모델명 ‘갤럭시 노트’의 출발점이었다. 연구원들은 큰 화면에 따른 휴대성 부족을 만회하기 위해 두께와 무게 줄이기에 우선 주력했다. 제품 안에 휴대용 펜까지 넣으려니 자리가 좁아터졌지만 악으로 일하니 가닥이 잡혔다. 몇 달이 걸려 5.3인치 대화면에 9.65mm 두께, 182g 무게의 시안을 만들어 내자 분위기가 밝아졌다.
전작 갤럭시S2(8.9mm 두께, 120g 무게) 대비 두께를 줄였고 무게가 늘었어도 불편한 수준은 아니었다. 제품을 들어보니 어색하지 않자 미소가 나왔다. 전자펜은 일본 와콤의 제품이다. 향후 자체 개발에 나서겠지만 일단은 품질이 검증된 기술을 들여와 빨리 데뷔시키겠다는 전략이었다. 현존 필기 인식 기술은 와콤이 최고라고 임원들이 판단했다.
드디어 대망의 데뷔전.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 유럽을 시작으로 갤럭시 노트 출시 행사를 줄줄이 열었다. 현지 화가들을 영입, 갤럭시 노트로 얼굴을 그려주는 이벤트에 인파가 몰렸다. 이를 지켜보는 삼성전자 임원들의 심정은 한마디로 조마조마. 날마다 판매량 성적을 체크하며 ‘대박’이 나길 기다렸다.
결국 갤럭시 노트를 출시한 지 두 달여가 지난 지난해 12월 말. 자랑할 만한 판매량 성적표가 나왔다. 갤럭시 노트 판매량 100만 대 돌파 소식이다.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려고 했다는 뜻도 자신 있게 내비쳤다. 당시 삼성전자는 “생태계 창출자로서의 입지를 확보했다”는 표현을 공식 보도 자료에 명시했다. ‘뛰어난 기능으로 몇 대가 팔렸다’가 핵심이었던 과거 자료들에서는 찾기 힘든 말이다.
해외 미디어의 호평, 마케팅 총력전도
판매량에 탄력이 붙자 소비자들은 지갑을 더 열기 시작했다. 출시 5개월 만인 지난 3월 갤럭시 노트는 누적 판매량 500만 대라는 대기록을 썼다. 이에 힘입어 삼성전자는 중국·프랑스·스페인 등에서 애플 아이폰을 밀어내고 스마트폰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세계 최대 시장 중국에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해외 미디어와 소비자들은 호평을 쏟아냈다. 갤럭시 노트는 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네덜란드 등 유럽 4개국 소비자 연맹지에서 실시한 스마트폰 성능 평가에서 터치스크린, 통화 품질, 배터리 지속 시간, 사진 품질 등의 항목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1위를 차지했다. 큰 화면과 필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는 쏙 들어갔다.
마케팅 총력전도 갤럭시 노트의 인기를 이끌었다. 삼성전자는 지난 2월 미국 슈퍼볼 경기에 갤럭시 노트 광고를 띄웠다. 광고 시간 90초에 1800만 달러라는 막대한 금액을 투입했지만 슈퍼볼 최고 광고를 뽑는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등 쏠쏠한 재미를 봤다.
이처럼 삼성전자의 새로운 ‘필기 생태계’ 창출 계획이 현재까지는 순조롭다. 경쟁사 LG전자도 5인치 화면에 필기 기능을 탑재한 ‘옵티머스 뷰’를 지난 3월 출시, 생태계에 구성원으로 뛰어들었다. 경쟁 제품이라는 거부감보다 생태계가 자라는 것에 대한 반가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고 삼성전자 임원들은 설명한다. 신 사장은 “필기가 가능한 스마트 기기라는 새로운 생태계가 이미 생겨난 것”이라며 “올해 안에 갤럭시 노트 판매량 1000만 대 이상을 달성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물론 갈 길은 아직 멀다. 갤럭시 노트와 옵티머스 뷰만으로 생태계 대세론을 논하기는 이르다. 다른 경쟁사들도 이와 관련해 말을 아끼며 시장을 관망하는 모습이다. 필기 기능을 탑재한 차기 제품들의 역할이 큰 이유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10.1인치 갤럭시 노트 신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제품 공개 행사는 이미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서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2’에서 열었다. 기존 갤럭시 노트에 새로운 기능들을 추가했다.
끝으로 궁금증 한 가지. 만에 하나 삼성전자의 뜻대로 스마트폰 필기 생태계가 대세가 된다면 애플은 어떻게 움직일까. 잡스가 생전에 “전자펜 방식 필기는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했기에 더욱 궁금하다. 애플이 ‘팔로워’가 된다면 당사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보기술(IT) 역사의 한 면을 장식할 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김태정 지디넷코리아 기자 tjkim@zdne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