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TV, 강남구 1㎢당 32대…수원 지동은 고작 8대
“밤길이 위험하다고 그렇게 폐쇄회로(CC)TV를 설치해 달라고 요청했는데도 무시하더니, 사건이 터지고서야 부랴부랴 공사하는 모습을 보니 분통이 터집니다.”

‘수원 토막살인 사건’이 일어난 지 9일째 되는 지난 10일. 사건 현장 근처 경기도 수원 지동 세지로 306번 길에 마을 주민 10여명이 서성이고 있었다. 분을 삭이지 못한 표정으로 한곳을 바라보다 기자가 다가가자 한마디씩 거들었다.

마을 주민들의 시선이 쏠린 곳에선 구청 직원들과 인부들이 한창 CCTV 설치공사를 하고 있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난 장소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지점이었다. 지동초등학교 부근에서 W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모씨(56)는 “부녀회 차원에서 CCTV를 설치해 달라고 경찰에 수차례 민원을 냈지만 묵살당했다”며 “돈 없다고 설치를 못해준다더니… 경찰과 시가 애꿎은 사람을 희생시킨 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마을엔 7300가구 1만6000명이 모여산다. 그러나 시민의 안전을 담보해 줄 CCTV는 고작 8대. 사건이 터진 뒤 6대가 부랴부랴 추가로 설치되기는 했다.

사고현장 부근 H부동산 관계자는 13일 “문화재로 지정된 수원화성 근처라 재건축이 쉽지 않아 낡은 집들이 몰려 있어 남자들도 밤에 다니길 꺼릴 정도”라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지동 주민들은 지난 3년간 사고 장소 일대에 CCTV를 설치해 달라며 20여차례 민원을 넣었지만 시 당국은 예산부족을 이유로 주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1㎢당 CCTV…서울 강남 32대, 수원 6대

CCTV는 사생활침해 논란에도 불구, 범죄예방 효과와 사건 발생 후 용의자를 찾아내고 범인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자료로 활용된다. 이런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설치를 지원하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692대의 방범용 CCTV가 통합 운용되기 시작한 2002년 관내 강도와 절도 발생 건수는 각각 252건, 3744건이었다. 그러나 지난해는 각각 45건, 2360건으로 최고 80% 이상 줄었다.

하지만 지역별로 CCTV 설치 대수와 성능은 천차만별이다. 치안에도 ‘부익부 빈익빈’의 쏠림 현상이 일어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수원살인 사건을 계기로 본지가 수도권 지역 CCTV 현황을 조사한 결과 서울 전체 CCTV 설치 대수는 1만9308대였다. 수원시(면적 121㎢)는 731대로 서울(면적 605㎢)이 26배나 더 많았다. 두 도시의 인구는 서울이 1052만명, 수원이 111만명(4월 기준)이다. 특히 서울 강남 등 ‘부촌(富村)’ 지역은 거리 곳곳에 CCTV가 설치돼 ‘그물 감시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서울 강남·서초·용산구에 설치된 CCTV는 각각 1299대, 1266대, 1307대. 반면 수원의 경우 강남·서초·용산구(각각 면적 40㎢, 47㎢, 21㎢)보다 면적은 훨씬 넓지만 CCTV 대수는 이에 훨씬 못미치는 731대에 불과했다.

1㎢당 CCTV 분포 대수로 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강남구는 1㎢마다 32대, 서초구 27대, 용산구 60대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수원은 1㎢ 당 6대에 그친다. 이번에 살인사건이 일어난 수원시 지동(면적 0.7㎢)엔 사고 당시 고작 8대였다. 조선족 등 외국인이 많이 살고 있는 구로구도 1㎢당 32대의 CCTV(전체 647대)가 설치돼 있다.
CCTV, 강남구 1㎢당 32대…수원 지동은 고작 8대
예산이 문제…강남구 146억원, 수원 11억원

지역별로 설치된 CCTV 대수가 큰 차이를 보이는 건 예산문제 때문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서울 지역에 촘촘한 CCTV 감시망이 깔리는 이유다.

지난해 수원시 전체 CCTV 설치 예산은 11억원. 반면 작년 서울 강남구가 배정한 예산은 146억원으로 수원시보다 13배 이상 많다. 염태영 수원시장이 지난 9일부터 해당 부서와 함께 회의를 갖고 시내 CCTV 증설과 방범순찰활동 강화 등 대책 마련을 논의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얼마나 많은 예산이 투입될지는 미지수다.

수원시청 정보통신과 관계자는 “CCTV가 범죄 예방에 가장 좋은 대책이라는 걸 인정한다”며 “하지만 한 대 설치 비용이 2000만원 정도여서 주민의 요구를 모두 다 들어줄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해명했다.

서울 이외 수도권 지역 곳곳에서 최근 들어 크고 작은 강력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는데도 상대적으로 재정형편이 어려운 지역들이 많다보니 치안에서도 악순환이 빚어진다. CCTV가 턱없이 부족하면서 ‘빈부차→치안 양극화→빈촌(貧村)의 우범지대 고착화’라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찰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집값이 싼곳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이들 중 다수는 사는 곳의 집값이 오르면 타(他)지역으로 옮겨가게 되고 이로 인해 ‘범죄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41만화소 ‘허수아비’ CCTV…얼굴 식별도 안돼

작년부터 정부 지원으로 지역마다 CCTV 설치가 확대되고 있지만 성능(화질)도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다. 전국에 설치된 CCTV는 41만화소가 대부분이다. 낮에 찍힌 화면도 신원을 식별할 수 없을 정도다. ‘허수아비’ CCTV인 셈이다.

이 점에서는 강남구도 예외는 아니다. 방범용 692대 중 480대가 41만화소다. 2010년부터 교체된 212대가 겨우 200만화소다. 이마저도 야간에는 얼굴 식별이 힘들고 낮에도 50m를 벗어나면 알아볼 수 없다. 서초구도 방범용 CCTV 599대 가운데 489대가 41만화소고 나머지 110대는 130만화소다.

이번 수원 토막살인사건 범인이 피해자를 끌고 가는 모습이 찍힌 CCTV도 200만화소다. 50m 떨어진 곳의 모습을, 그것도 밤에 잡다보니 범인과 피해자의 얼굴은 윤곽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500만화소까지 개발돼 있지만 고가의 디지털장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실용화되지 못한 상태”라며 “현재 CCTV는 과거 버전인 SD와 신 버전인 HD로 나뉘는데 일반TV와 HD TV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포딕스시스템 관계자는 “현재 설치돼 있는 CCTV의 대부분이 SD라고 보면 되고 최근 들어 HD를 많이 설치해 나가는 추세”라며 “HD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영상물 저장장치의 용량도 함께 커야 해 재정이 어려운 지자체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우섭/하헌형/박상익/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