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사진)가 ‘시중에 돈을 푸는 방식’의 미국 중앙은행(Fed) 통화정책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 교수는 11일(현지시간) 바드컬리지가 뉴욕 맨해튼 포드재단 빌딩에서 개최한 ‘부채, 적자 그리고 금융 불안정’이란 주제의 콘퍼런스에서 “미국이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통화정책 대신 재정정책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한국경제신문이 단독 취재한 콘퍼런스에서 “재정을 투입해 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것만이 현재의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푸는 것보다는 정부가 직접 은행의 부채를 사들인 뒤 주식으로 전환해 이를 통해 모기지증권 등 악성 자산을 없애야 미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악성 자산 때문에) 미국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여전히 취약하다”며 “현재 은행의 대차대조표는 자산에 대한 시가평가가 아닌 ‘희망가격 평가’를 통해 부풀려진 것”이라고 비꼬았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어 “역사적으로 일본도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전통적인 통화정책을 사용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며 “1997년 동아시아 통화위기 당시 은행의 자본확충 정책을 활용한 한국과 말레이시아만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Fed가 최근 은행들에 배당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도 강하게 비판했다. 은행의 잘못된 대차대조표를 바로잡아야 하는데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 그는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은행의 경영진과 주주들은 어차피 파산해도 정부로부터 돈(구제금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배당을 안 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며 도덕적 해이를 비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과거에도 여러 번 벤 버냉키 Fed 의장과 전임자인 앨런 그린스펀 전 의장을 강한 어조로 비판해왔다. 그린스펀 의장은 저금리 정책으로 거품을 키워 금융위기를 초래했고, 버냉키 의장도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돈을 푸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

스티글리츠 교수는 특히 Fed 등 규제당국이 금융업계의 논리에 사로잡혀 이들을 제대로 규제하지 못한 점을 비판해왔다. 이날 콘퍼런스에서도 그는 “시장참가자들의 합리적 선택이 경제 전체의 성과로 이어진다는 합리적기대가설은 현재 경제상황으로 비추어볼 때 옳지 않다”면서 은행들에 대한 규제 강화를 주문했다. 그는 “그린스펀 전 의장이 과거 의회 청문회에서 ‘은행들이 생각보다 리스크 관리를 잘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놀랐다는 것에 더 놀랐다”면서 “은행들의 인센티브 시스템은 과도하게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설계돼 있었다”고 말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어 “금융위기 직후 버냉키 의장은 ‘걱정이 되느냐’는 질문을 받고 ‘리스크는 줄어들 것’이라고 대답했었다”면서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파생상품을 전 세계에 내다팔아 리스크를 분산시켰다는 믿음에서였는데 전염병을 치료하는 대신 전 세계에 퍼뜨려놓고 전염병이 해결됐다고 믿은 꼴”이라고 비꼬았다. 그는 “소위 금융산업 혁신을 통해 개별 은행들은 선진적인 리스크 평가 및 관리 기법을 개발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재앙이 됐다”며 “금융업계에서 혁신 경쟁이 붙을 경우 규제당국은 그 내용과 시장에 미칠 영향을 반드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욕=유창재 특파원 yooc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