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예상 밖의 결과로 끝나자 야권 대선 주자들의 위상도 변화하고 있다.

먼저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부산 사상에서 손수조 새누리당 후보에게 이겼지만 부산·경남(PK)에서 당초 목표했던 의석(최소 5석 이상)에 못 미치는 3석을 얻음으로써 당내 영향력 면에서 일정 수준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와 관련, “선거운동 기간 수도권 등 다른 지역에 대한 당 지도부의 긴급 요청까지 묵살하고도 PK에서 목표 의석을 달성하지 못한 데 대한 책임을 벗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반면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자신의 지역구(전주 덕진)를 버리고 새누리당의 텃밭인 서울 강남에 출사표를 던졌으나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새누리당)에게 큰 표차로 패배해 사실상 대권 경쟁에서 탈락할 위기에 놓였다.

손학규 민주당 상임고문도 지원 유세를 맡았던 수도권에서 승리를 거두는 데 기여했으나 정작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 분당을을 지켜내지 못해 위상에 금이 간 상황이다. 분당을에서는 손 고문이 전폭적으로 지원한 김병욱 후보가 한글과컴퓨터 최고경영자(CEO) 출신인 전하진 새누리당 후보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정세균 민주당 상임고문은 정치1번지라는 서울 종로에서 거물급 상대 후보인 홍사덕 새누리당 의원을 물리침으로써 위상을 크게 높였다. 4선을 했던 호남 지역구(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를 떠나 종로에 전격 출마해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의 측근을 꺾었다는 점에서 당내 영향력이 커지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이번에 세종시에서 승리를 거둔 이해찬 전 총리도 마찬가지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 전 총리와 정세균 고문 모두 본선보다는 경선 과정에서 야권 대선 레이스의 흥행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김두관 경남지사도 조만간 대선 행보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가 정계에 나돌기 시작했다. 한 관계자는 “김 지사는 밑바닥에서부터 정치 인생을 시작한 인물로 스토리와 경험, 인품을 갖춘 야권의 ‘히든 카드’로 꼽힌다”며 “대선 행보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링 밖에서 ‘강연 정치’로 간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은 이번 총선으로 기존 정당에 발을 담그기보다 창당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던 안 원장이 과연 빨간 옷(새누리당)이나 노란 옷(민주당)을 입으려고 하겠느냐”며 “사실 당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은 지지율과 돈인데 안 원장은 이 두 가지 모두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총선이 끝나자마자 이미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는 시작됐다”며 “새누리당 쪽에서는 사실상 박 위원장이 대세를 거머쥔 만큼 야권에서는 다양한 인물들이 서로 경쟁하며 박 위원장에 필적할 경쟁력을 높여가는 구도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