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샤프, LCD 공장 훙하이에 매각…日 전자업계 몰락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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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삼성이 아이폰에 놀랄때 NEC는 '콧방귀'
(2) 오너중심 한국보다 스피드 떨어져
(3) 창업세대 은퇴후 혁신에너지 상실
(4) 선택과 집중 착오 '외다리 타법' 한계
(2) 오너중심 한국보다 스피드 떨어져
(3) 창업세대 은퇴후 혁신에너지 상실
(4) 선택과 집중 착오 '외다리 타법' 한계
한국과 대만 전자업체의 공세에 시달리던 샤프는 2007년 결단을 내린다. 오사카부 사카이시에 세계 최대 규모의 TV용 LCD(액정표시장치) 공장을 짓기로 한 것. 공장 건설과 인근 인프라시설 구축에 1조엔(14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단박에 한국과 대만 업체들을 따돌리겠다는 계산. 결과는 참패였다.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들과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적자는 불어나기만 했다.
결국 손을 들었다. 일본 전자업체 샤프는 10일 주력 생산시설인 사카이공장의 경영권을 대만 훙하이그룹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보유지분 가운데 절반 이상을 훙하이그룹에 매각하는 방식이다. 사카이공장의 가동률은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일본 전자업체의 부진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나오는 뉴스라곤 주력사업 매각, 감원 등 구조조정에 관한 것뿐이다. ‘전자왕국’ 일본은 이제 옛말. 그동안 일본 전자업체엔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스피드 떨어진 공룡
2008년 도쿄. 애플 아이폰이 발매되고 1년이 지났을 무렵, 일본 기자가 NEC 고위 간부에게 물었다. “아이폰의 약진을 어떻게 보십니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아이폰이요? 아직 틈새상품이잖아요.” 비슷한 시기 삼성전자의 한 간부는 똑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아이폰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위기감의 차이는 곧바로 실적으로 이어졌다. 삼성전자는 즉시 대항 제품 개발에 나섰다. 이듬해 ‘갤럭시’를 출시했고, 지금은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반면 NEC는 3년이 지난 작년 봄에야 겨우 스마트폰을 선보였다. 한 번 벌어진 격차는 좁히기 어려웠다. NEC는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에 1000억엔의 적자를 냈다. 매출은 전성기였던 2000년(5조4000억엔)의 60% 수준인 3조1000억엔으로 쪼그라들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오너 중심의 한국 기업에 비해 일본 전자업체는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다”며 “스피드의 격차가 일본 전자업체 부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혁신 에너지가 사라졌다
기업혁신 연구로 유명한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창조적 에너지의 상실’을 일본 전자업계의 침체 원인으로 꼽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니. 1950년대 이후 소니는 ‘혁신기업’의 상징이었다. 워크맨을 비롯해 트랜지스터 라디오, 휴대용 흑백TV, 플로피 디스크 구동장치 등 그동안 세상에 없었던 신제품을 끊임없이 쏟아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1980년대까지 소니는 12가지의 파괴적인 혁신상품을 선보였지만 그 이후 놀랍게도 단 한 건의 제품도 혁신적이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노트북 ‘VAIO’ 등 히트상품이 있긴 했지만 기존 제품의 개량에 지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그는 “성공한 기업이 점차 적극성을 잃고 보수화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지만 소니처럼 극단적으로 변한 사례는 드물다”고 말했다. 변질의 주원인은 창업세대의 은퇴. 1990년대 들어 소니의 창업주들이 하나둘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조직문화가 급속히 관료화됐고, 이로 인해 과거의 성공 경험에만 안주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선택과 집중의 복수
2007년 세계에서 태양전지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기업은 일본 샤프였다. 그러나 작년엔 8위에 그쳤다. 매출 규모가 전년 대비 20% 이상 감소했다. 원인은 하나. 중국 기업의 약진이다. 중국 정부의 대규모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의 등장으로 한순간에 가격경쟁력을 잃어버렸다. 샤프는 판을 잘못 읽었다. 태양광 발전이 차세대 성장산업이라는 명제에만 매달려 잘못된 선택과 집중을 했다.
2000년대 들어 소니 파나소닉 샤프 등 일본 전자업체들이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TV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 것도 판단착오로 지적된다. 소니는 TV용 액정패널 조달을 위해 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S-LCD라는 합작회사를 세웠고, 샤프와 파나소닉은 잇따라 생산시설 확대에 나섰다. 일본 언론들은 전자업체들의 과도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외다리 타법’에 비유했다. 니혼게이자이는 “한쪽 다리에만 너무 힘을 싣는 바람에 상황 변화에 대한 순발력이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