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경찰청장 전격 사퇴…수사권 달라고? "무능ㆍ부패 경찰" 비난 빗발
조현오 경찰청장이 9일 ‘수원 20대 여성 엽기살해사건’을 부실수사하고 사후에도 은폐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부실 초동수사로 국민의 생명 보호에 실패한 것도 모자라 늑장대응에 거짓해명으로 일관하다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경찰 최고책임자가 사건 발생 8일 만에 사퇴하기로 한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조 청장의 사의를 수용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 청장은 이날 서울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든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며 머리를 숙였다. 당초 미리 배포한 ‘대국민사과문’에서는 “어떤 비난과 책임도 회피하지 않겠다”는 선으로 사과 수위를 정했지만 기자회견 직전에 ‘사퇴’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조 청장은 청와대와의 사전 조율 여부에 대해 “나 혼자 결정한 일”이라고 강조하면서 “피해자와 유족, 국민에게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물러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물러나겠다”면서도 “사표가 수리되는 날까지 112사건처리시스템, 상황실 운영체계 등을 제대로 갖춰놓겠다”고 다짐했다.

서천호 경기지방경찰청장(사진)도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치안 최일선에 선 경찰이 국민의 생명을 두고 ‘무능의 끝’을 보여준 만큼 조 청장과 서 청장이 동반사퇴해도 파문이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특히 국민들을 상대로 사건 발생 직후부터 시종일관 거짓말로 일관해왔다.

경기도 수원시 지동 주택가에서 귀가하던 A씨(28·여)가 조선족 B씨(42)에게 납치된 건 지난 1일. A씨는 같은 날 오후 10시50분께 경기지방경찰청 112신고센터로 신고했지만 단순한 부부싸움으로 판단한 경찰은 6명만 현장에 보냈다.

A씨가 “성폭행 당하고 있다. 지동초등학교 지나 못골놀이터 가는 길에 있는 집”이라며 범인의 집을 구체적으로 알려줬지만 묵살했다. 경찰은 지난 2일 A씨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으로 돌아오자 부랴부랴 사건 은폐에 나섰다.

7분36초인 A씨의 112신고 녹취록 분량을 ‘15초→80초’라고 조작해 발표했다. “경찰 35명을 동원해 인근 지역에서 탐문조사를 벌였다”는 터무니없는 거짓말도 덧붙였다. “119와 연계해 위치추적을 했다”고도 해명했지만 “A씨와 휴대전화 통화연결이 됐다”는 유족들의 제보에 “직접 119에 신고하라”며 위치추적을 떠넘긴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심지어 당시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은 순찰 도중 차 안에서 졸기도 했다. 밖에서는 진실공방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책임자인 서 경기청장은 녹취록 전문을 지난 7일 오전에야 보고받았다. 경기 지역 치안 최고책임자에게조차 ‘축소 보고’, 지휘 계통이 완전히 실종됐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경찰청이 지난 6일 수원중부경찰서 김평재 서장과 조남권 형사과장을 대기발령하고, 8일에는 서 청장이 공식사과했지만 비난 여론이 가라앉지 않은 이유다. 여기에 최소한의 기본도 안돼 있는 112신고센터 담당자의 한심한 대응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비난 여론에 불이 붙었다.

“성폭행 당하고 있다”는 신고에 “저기요, 지금 성폭행 당하고 계시다구요” 식의 답답한 답변만 되풀이하는 사이 한 여성의 소중한 생명이 빼앗겼다. 녹취록에는 당시 A씨의 비명소리가 여과없이 담겼지만 112센터 담당자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이 과연 수사 주체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도 커지고 있다.

김선주 기자 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