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외환시장이 너무 조용하다. 미국 경기, 유럽 재정위기 등 외부 변수의 자극성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꾸준히 등락을 거듭하는 증권시장과 달리 원·달러 환율은 최근 한 달간 1120~1140원의 박스권에 갇혀 지루한 횡보를 거듭하고 있다. 환율 안정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만 변동폭이 너무 작을 경우 딜러들은 거래 수익을 올리기 어렵다.

◆오르면 팔고, 내리면 사고

지난 1분기 환율의 하루 등락폭을 나타내는 ‘일중 변동폭’은 평균 5.0원으로 2007년 4분기(3.8원) 이후 4년3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전날 종가와의 차이를 알려주는 ‘일간 변동폭’(평균 3.9원)도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이달 들어서도 비슷하다. 지난 6일에는 하루 변동폭이 2.75원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사자’와 ‘팔자’ 어느 한 쪽의 뚜렷한 우위를 가릴 수 없다. 지난 1~2월 10조원어치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은 지난달 9000억원으로 순매수 규모를 축소했다. 외환보유액이 크게 늘어 환율 급등에 대한 우려가 줄어든 점도 상승을 제약하는 요인이다.

3월 말 외환보유액은 3159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고유가로 인해 달러 수요가 늘어나고 있긴 하지만 환율 흐름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때문에 환율이 1140원까지 오르면 조선사 등 수출업체들은 달러를 팔아치우고 1110원대로 떨어지면 정유사 등 수입업체들이 달러를 사모으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외환 투기세력들의 시장 참여가 줄어든 점도 시장을 조용하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은행의 한 딜러는 “딜러 입장에서는 괴로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며 “역외 세력들도 변동성이 너무 작으니까 시장에 못 들어온다”고 전했다.

◆1100원 바닥으로 하향 안정세

원·달러 환율은 당분간 1100~1150원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 전망치를 내놓은 15개 투자은행(IB)의 2분기 평균 환율은 1116원10전이었다. 1분기 평균 환율(1131원30전)에 비해 15원가량 떨어진 수준이지만 현 박스권이 약간 하향 이동하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공급 측면에서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등 수출 주력 기업들의 실적 호조가, 수요 측면에선 고유가에 따른 달러 결제 수요 증가와 외국인의 배당금 송금이 각각 팽팽하게 맞설 전망이다. 여기에 미국의 경기 회복으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는 분석이 환율의 하향 안정(원화의 안정적 상승)을 이끌 것이라는 얘기다.

전승지 삼성선물 과장은 “선진국들의 저금리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을 선호하는 외국인들의 원화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향후 환율 움직임은 유럽 재정위기 등이 국내외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는 파행으로 치닫지 않을 경우 점진적 하향 추세를 띨 전망이다. 다만 분기당 평균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떨어질 가능성도 낮다는 게 딜러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신한은행의 한 딜러는 “한국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100bp(1bp=0.01%포인트)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한 환율도 1100원 선을 아래로 깨고 내려가기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