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충남 부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50년 조선인민군과 대한민국 국군 양쪽에 모두 징집돼 동족상잔의 비극을 온몸으로 체험했던 시인 신동엽. 그는 한국전쟁 당시 부패한 군 간부와 공무원들이 군수품을 빼돌리는 것을 본 뒤 사회 비판과 현실 참여 의식의 군불을 지폈던 열혈남아였다. 1959년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로 시인의 꿈을 이룬 그는 이듬해 4월 ‘학생혁명시집’을 집필하며 4·19혁명에 뛰어들어 청춘을 불살랐다.

훗날 자신이 본 맑은 하늘은 1960년 4월의 그것뿐이라고 했던 그날들을 떠올리며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67년)를 구슬피 읊조리고 ‘껍데기는 가라’(1969년)고 울부짖었던 천재 시인. 1967년엔 갑오농민전쟁을 다룬 장편 서사시 ‘금강’(총 30장 4673행)을 발표, 한국 시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한국 사회의 허위의식에 저항했던 현대 문단의 큰 별, 신동엽 선생이 간암으로 투병하다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버린 날이 43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

▶QR코드 찍으면 지난 인물도 모두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