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사는 최근 싱가포르에서 석유화학 제품을 수입하면서 한·아세안 자유무역협정(FTA)과 한·싱가포르 FTA를 혼동해 5000만원의 관세를 추징당했다. 수입신고는 한·아세안 FTA 절차를, 원산지증명은 한·싱가포르 FTA에 따라 제각기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와 거래하는 기업은 두 가지 FTA 중 유리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지만 품목과 원산지 증명을 각각 다른 FTA 절차로 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양 FTA 협정에 담겨 있는 세부 규정을 눈여겨보지 않은 탓이지만 그 대가는 가혹했다. 최근 터키를 비롯해 한국의 FTA 체결국이 9개국(지역)으로 늘어나면서 협정마다 제각기인 원산지 규정과 복잡한 통관절차 등으로 뜻하는 않는 피해를 보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른바 ‘스파게티볼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은 지금 ‘FTA와의 전쟁’

이집트 카이로에 면사생산공장을 운영하는 D사는 유럽연합(EU)과 지중해연합, 동남아프리카 공동시장(COMESA) 간 체결된 FTA 덕분에 이집트 면사 수출의 10%를 담당할 정도로 성장했다. 전자업체인 D사는 지난해 7월 한·EU FTA에 이어 지난달 한·미 FTA까지 발효되면서 연간 160억원가량 지급하던 관세를 약 50억원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처럼 FTA를 활용한 성공사례도 있지만 낭패를 보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FTA에 대한 인식부족과 함께 실제 기업경영에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FTA연구원에 따르면 A사는 최근 FTA가 체결되지 않은 국가의 자재가 사용된 것을 모르고 의류를 수입했다가 4000만원의 관세를 추징당했다. 또 칠레에서 와인을 수입하는 G사는 프랑스 물류창고를 거쳐 수입을 했다가 직접운송 입증서류를 제출하지 못해 5000만원의 관세를 내야 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FTA는 당사자를 제외한 제3자가 혜택을 보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며 “원산지 증명이나 물류 직접운송원칙 등과 관련한 서류를 꼼꼼히 챙겨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한·미 FTA 발효 후 특혜관세 적용 여부와 원산지기준 등을 문의하는 중소기업들이 급증하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상당수는 상품 또는 송품장에 원산지가 ‘미국’으로 표기돼 있으면 원산지 요건을 충족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미 FTA의 경우 원산지 판정에 대한 책임을 수출기업이 지게 돼 있어 자칫 그동안 감면받은 세금을 추징당하는 것은 물론 과태료와 가산세까지 부과될 수 있다.

○복합 FTA시대로 간다

재정부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발효 중인 FTA는 400여개가 넘으며 FTA를 통한 무역이 전체의 60%를 넘게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 한·중 FTA를 체결할 경우 중국기업과의 거래시 고려해야 할 FTA만 10여개에 이를 전망이다. 한·중·일 FTA, 아태무역협정(APTA), 아세안+3 FTA,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등 한두 개가 아니다.

한·아세안과 한·EU처럼 다자간 FTA와 양자 FTA가 뒤섞인 경우 어느 협정이 유리한지를 수출입 품목별로 구분해 내는 것도 쉽지 않다. 여기에 경쟁업체가 속한 국가가 체결한 FTA를 분석하고 영향을 분석해야 한다.

이창우 한국FTA연구원 원장은 “FTA 체결과 활용은 전혀 별개의 문제”라며 “기업 입장에서는 동시다발적으로 체결한 FTA가 경영에 엄청난 혼선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 스파게티볼 효과

Spaghetti Bowl Effect. 여러 국가와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체결할 경우 국가마다 서로 다른 원산지규정, 통관절차, 표준 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를 일컫는다. 이런 상황이 접시 속에 담긴 스파게티 가락들이 서로 복잡하게 엉켜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스파게티볼 효과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