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7시간 '열공'
영어·금융자격증 등 준비…면접 前 예상질문만 50개
인턴 때도 솔선수범
중대장 복무 경험이 큰 도움…2년 뒤엔 美투자자 데려와야죠
서울시 여의도동 우리투자증권 본사에서 지난해 입사한 우리투자증권 채권신디케이션팀 신입사원 김태욱 씨(30)를 최근 만났다. 인사를 나누는 순간 요즘 가상 연애 프로그램 ‘우리결혼했어요’에 출연중인 탤런트 이장우를 보는 듯했다. 뽀얗고 작은 얼굴과 훤칠한 키 단단한 체구, 온화하고 세련된 미소. 누구라도 그를 보면 일명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혹은 ‘엄친아’(엄마친구아들, 외모 직업 등이 뛰어난 남자를 뜻는 유행어)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온화하고 평범하게 자라 수월하게 입사했을 것 같아 보였지만 그의 이력은 증권업과 거리가 멀었다. 해군사관학교 졸업. 중대장 생활 3년을 포함해 5년간의 해병대 장교생활. 스물아홉 살 때 장교 전역. 직업군인으로서 안정적인 미래를 그려볼 수도 있었던 그가 군복을 과감히 벗고 양복을 입었다. 증권사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기 때문.
김씨가 증권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한국외국어대 야간대학원에 입학하면서부터다. “해사 시절 경영학과 경제학에 관심이 많아 MBA(경영전문석사)를 지원했어요. 글로벌 재무전략과 증권시장의 흐름을 익히며 재미에 푹 빠졌어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뭔지도 그때 찾았죠.”
그는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지난해 3월 전역했다. 대학원 졸업장이 있었지만 나머지 입사 스펙은 초라했다. 토익은 870점이지만 금융 관련 자격증은 한 개도 없었다. 김씨는 스펙 대신 간절함을 무기로 취업시장에 뛰어들었다. 매일 새벽 6시부터 토익학원 수강을 시작으로 영어회화학원 수강, 금융자격증과 취업 전공분야 공부, 취업스터디까지 마치고 나면 밤 11시를 훌쩍 넘겼다. 그렇게 석 달을 보냈다.
그는 다른 기업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가고 싶은 증권사 3곳을 선택,그 곳에 집중했다. 김씨와 함께 취업스터디를 했던 친구들은 “네가 전역한 지 얼마 안 돼 취업시장을 잘 모른다”며 다른 기업에도 지원하라고 종용했다. 하지만 김씨는 우리투자증권 입사전형이 시작되기 전부터 자기소개서를 수백 번 고쳤다. 똑같은 단어나 조사라도 어떻게 바꿔볼까 밤새 고민했다. 면접을 위한 자기소개도 30초, 1분, 3분 짜리로 다르게 설정해 준비했다.
지난해 6월 김씨는 전역 후 처음으로 지원했던 우리투자증권에 최종 합격했다. 지금은 국내 최초로 신설된 채권신디케이션팀에서 채권인수 및 중개업무를 배우고 있다.
자신의 강점이 뭐냐는 질문에 김씨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이라고 말했다. 그의 무기는 뛰어난 능력보다는 모든 사람이 인정할 만한 인성이었다. 어린시절부터 김씨 어머니는 “힘들어 죽겠다”는 부정적인 표현을 하면 ‘말이 씨가 된다’며 엄하게 인성교육을 시키셨다. 중학생 시절 이후로는 스스로 욕도 하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교육 덕분인지 중대장으로 복무 중엔 중대원들에게 채찍(힘)보다는 당근(인센티브)을 많이 사용했다. “배우 김혜자 씨가 그랬잖아요. ‘꽃으로도 사람을 때리지 말라’ 억압보다는 설득하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렇게 열린 마음을 키워왔습니다.”
김씨는 자신의 취업비결에 대해 3가지를 꼽았다. 스스로의 장점과 단점 태도를 분석했다. 진짜 원하는 직종이 뭔지 찾은 것. 그리고 적성·발전가능성·안정성을 고려해 그에 맞는 회사만 선택,집중했다. “면접 전 50개가 넘는 예상질문과 답변을 만들었습니다. 기업이 나를 뽑을 수밖에 없도록 치밀하고 세심하게 준비했어요.”
휴일이면 어김없이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는 김씨는 “2~3년 뒤엔 홍콩이나 미국에 가서 영어로 직접 외국 투자자들을 끌어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당장은 작은 일에도 책임감을 갖고 최선을 다하려고요. 복사나 커피 심부름 같은 사소한 일도 잘하는 직원에게 회사는 큰 일을 맡긴다고 생각하니까요. 일 중독 아니냐고요? 요샌 여자친구도 사귀려고 틈틈이 소개팅도 하고 있답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