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4·11 총선 '다모클레스의 칼'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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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달라 할 땐 '상머슴'의 모습…당선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제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길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parkp@snu.ac.kr >
제발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길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parkp@snu.ac.kr >
허나 선거운동을 벌이는 후보자에게 꼭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왜 유권자에게 그 소중한 한 표를 부탁하는가. 물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함이라고 대답할 터이다. 그러면 또 묻고 싶다. 왜 굳이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 것인가. 국회의원 되는 것이 다일수는 없지 않겠는가. 의원이 되는 것보다 의원이 돼서 무엇을 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과연 그 직무의 엄숙성을 아는가. 국회의원이란 단순히 명예나 가문을 빛내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국회의원을 ‘선량’이라고 하고 또 국회의원직을 헌법기관이라고 하지만, 그 정도의 언어로는 국회의원직의 엄숙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 국회의원직이야말로 정녕 ‘다모클레스의 칼’과 같은 것이 아닐까.
‘다모클레스의 칼’이라고 하는 것은 기원전 4세기 시칠리아의 왕 디오니시오스의 일화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그의 신하였던 다모클레스는 왕의 지위와 행복을 부러워했으나 내색하지 않은 채 아첨으로 일관하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디오니시오스는 호화로운 연회에 다모클레스를 초대해 자신을 대신해 왕의 생활을 해보라고 권한다. 속으로 쾌재를 부른 다모클레스는 왕의 제안대로 화려한 생활과 향락을 즐기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앉아 있는 옥좌 바로 위로 가느다란 말총으로 매단 칼이 걸려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모클레스의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던 디오니시오스의 계산이었던 것이다. 한 순간에 정황을 파악한 다모클레스는 겉으로 권력과 부를 모두 소유한 것처럼 보이는 권력자의 자리가 사실은 불안과 위기,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한 자리임을 깨닫고 재빨리 도망쳐버렸다.
이 ‘다모클레스의 칼’이야말로 국회의원직의 엄숙함과 절박성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왜 하필 칼이 머리 위에만 있겠는가. 국회의원들은 머리 위에만 칼이 있는 게 아니라 아예 칼 위에 발을 대고 서 있는 존재라고 보아야 한다.
우리 국회는 특히 선출될 때가 아니라 선출되고 나서가 문제다.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표를 달라고 할 때는 글자그대로 ‘상머슴’의 모습이다. 유권자들을 향해 악수나 인사만 하는 것이 아니다. 아예 유권자의 양말을 벗기고 발을 씻기며 무릎꿇고 큰 절을 수도 없이 할 태세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겸손하고 충직한 머슴처럼 처신하겠다고 한 사람들이 일단 국회의원이 되고 나면 표변한다. 국회가 씨름장도 아닌데 수시로 상대방 의원을 상대로 멱살도 붙잡고 힘자랑도 한다. 그리고 나선 무용담도 털어놓는다. “누구는 붙어보니 별거 아니더라” 하는 식이다.
바로 이번 18대 국회가 그랬다. 허구 헌날 폭력이었다. 심지어는 최루탄까지 터뜨렸다. 전쟁터도 아니고 시위장소도 아닌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최루탄까지 터뜨리고 나서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빗댄다. 최루탄을 몰래 숨겨와 의사당에서 터뜨린 것이라면 영락없는 ‘꼼수’의 행동인데, 어떻게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바쳐 의로운 행동을 한 순국선혈들의 행동과 감히 비교할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입법자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모욕하고 나서도 국회의원만은 또 되겠다고 한다면 얼마나 염체없는 일인가.
총선에 나선 후보자들이여! 유권자들을 향해 제발 큰절을 하지 말라. 또 국회의원이 되면 지역을 발전시키겠다고 하지 말라. 또 나라를 위해 국회의원이 될 결심을 했다고도 말하지 말라. 지키지도 못할 약속이나 위선적인 말을 하면서 유권자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 것은 죄악이다.
지킬 수 있는 약속,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약속을 하라. 그것이 무엇인가. 국회에 들어가서 폭력만은 절대로 행사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만일 손으로 상대방 의원의 멱살을 잡으면 그 손목을 잘라버리겠다고 공약하라. 또 상대방 의원을 향해 발길질을 하면 그 발목을 잘라버리겠다고 약속하라. 엽기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국회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훨씬 더 엽기적인 것이다. ‘다모클레스의 칼’을 기억하는 길은 이 방법밖에 없다.
박효종 < 서울대 정치학 교수 parkp@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