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저 흉물스런 철사다리를 걷어내라!” 예술가들의 탄원이 이어졌다. 프랑스혁명(1789년)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년 전 야심차게 시작된 에펠탑 공사였지만 파리지엥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역작이 수포로 돌아갈 위기에 몰린 프랑스 건축가 구스타프 에펠은 일생일대의 도박을 건다. “공사비(800만프랑)의 80%를 내가 부담할테니 앞으로 20년간의 수익은 내게 달라.” 26개월에 걸친 공사를 어렵사리 마무리지은 에펠은 1889년 파리만국박람회 행사기간 6개월을 포함, 단 7개월 만에 투자금 650만프랑을 회수했다. 그리고 19년 이상 입장료 수입은 그의 몫이었다.

만 20년이 지난 1910년. ‘기술의 승리’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했지만 철탑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여전했다. 에펠과 파리시는 묘안을 냈다. 철탑의 용도를 전파중계탑으로 변경한 것. 본래의 높이(300m)보다 20m가량 높아지면서 모양이 약간 바뀌긴 했지만 자신의 분신을 지킬 수 있었다.

에펠탑은 1930년 미국 뉴욕에 크라이슬러 빌딩이 들어서기 전까지 전 세계 최고(最高) 건축물의 명예를 누렸다. 소설가 모파상은 흉물스런 ‘철사다리’가 보기 싫다며 자신의 기념상을 돌려 세웠고, 시인 베를렌은 철탑을 피해 길을 우회했지만 오늘날 에펠탑은 파리를 넘어 유럽의 상징이 됐다. 그 상징물이 세워진 날이 123년 전 오늘이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