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빨간자전거, 그린시티로 달린다
봄 기운이 완연한 미국 워싱턴DC 시내. 매사추세츠 애비뉴 선상의 원형 교차로에 설치된 전자식 자전거 주차장에 빨간색 자전거들이 들락거렸다. 몇 분 새 예닐곱 명이 자전거를 빌려타고 나가거나 반납하러 들어왔다. 배낭을 어깨에 멘 젊은 관광객, 선글라스를 끼고 쇼핑 나온 아주머니, 출퇴근하는 통근자 등 이용자들은 가지각색이었다. “출범 4년 만에 안착됐다”는 워싱턴 시정부 교통당국의 홍보에 긴가민가했던 의구심은 사라졌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 하면 떠오르는 것은 흰색 백악관과 웅장한 연방의회 건물, 흑인노예 해방의 상징인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기념관, 조지 워싱턴 대통령 기념첨탑이다. 이제는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Capital Bikeshare Program)’을 하나 더 보태야 할 것 같다. 워싱턴 시정부가 2008년 미국에서 처음 도입해, 가장 큰 규모로 운영하는 이 프로그램은 최근 고유가가 겹치면서 각광받고 있다.

○“고유가 시대 1석4조”

워싱턴 빨간자전거, 그린시티로 달린다
듀폰서클 근처 애스펜연구소의 에릭 봄 씨. 사무실에서 약 3.2㎞ 떨어진 곳에 사는 그는 출퇴근할 때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을 활용한다. 그는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으면 40~50분이나 걸리고, 버스를 타자니 오래 기다려야 하고, 그렇다고 승용차를 직접 몰고 다니자니 고유가가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1년6개월 전 연간 회원으로 이 프로그램에 가입한 직장인 레베카 로욜라 씨는 “시내에서 잡아타기 힘든 택시보다 이용하기가 편리하고, 운동삼아 살도 뺄 수 있어 이 프로그램이 좋다”고 웃으며 말했다.

19번가 조지워싱턴대에 다니는 앤드류 커닝햄 씨는 지난해 8월23일 워싱턴 등 미국 동부지역에 지진이 발생했을 때 이 프로그램 덕을 톡톡히 봤다. “지진에 겁을 집어먹고 시내를 벗

나려는 차들로 도로가 꽉 막혔지만 자전거를 타고 평소와 다름 없이 여유롭게 귀가했다”는 것. 워싱턴시 교통과가 기록한 통계를 봐도 당시 오후 2시와 4시 사이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자전거를 이용한 횟수는 1236건으로 전날보다 세 배 이상 많았다.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은 휘발유값 절약, 건강 증진에 교통체증을 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 자전거 정비와 도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1석4조의 효과를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이 개인적으로 구입해 타는 자전거는 정비와 관리비용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시내 도로변에 주차할 때마다 누가 훔쳐가지 않을까 마음을 졸여야 한다.

○자전거 도둑 걱정 안해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은 2008년 10개 주차장과 자전거 110대로 시작됐다. 현재 워싱턴 시당국은 시내 주요 지점마다 145개 자전거 주차장을 갖추고 1200여대에 달하는 자전거를 대여하고 있다. 자전거 차체는 소방차와 같은 빨간 색으로 통일했다. 자동차 운전자들의 눈에 확 띄도록 해 교통사고를 줄이자는 목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하루 회원(회비 7달러), 3일 회원(15달러), 30일 회원(25달러), 연간 회원(75달러) 4가지다. 회비와는 별도로 한 번 이용할 때마다 자전거 사용비를 내야 한다. 단 첫 30분 사용은 무료다. 30분이면 웬만한 워싱턴 도심 내 장소로 이동할 수 있어 상당히 실용적이다. 31~60분 사용은 2달러, 61~90분 사용은 6달러를 내야 한다. 이후 추가되는 사용시간은 30분마다 8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워싱턴 시내에서 개인 승용차로 움직이면 비싼 휘발유를 소비해야 하는 데다 주차공간을 찾아 헤매야 한다. 주차비도 최대 2시간에 2~4달러(1시간 이상 지하주차료는 최대 15달러)에 이른다.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은 한 지점의 자전거 주차장에서 자전거를 빌려타고 나서 목적지 근처의 다른 자전거 주차장에 반납하면 그만이다. 사용비 결제와 주차관리는 첨단 전자식으로 이뤄진다. 사용비는 각 주자창에 설치된 결제기에서 신용카드로 지불한다. 하루와 3일 회원권은 구입 시 다섯자리 번호를 받는다. 이 번호를 전자식 거치대에 입력하면 자전거를 이용할 수 있다.

음흉한 회원이 자전거를 타고 달아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프로그램이 시작된 이후 4년 동안 도난사고는 10건이 채 안 된다. 신용카드를 사용해야 하는 회원들은 신분 추적이 가능한 데다 1대당 1000달러나 하는 벌금 탓에 절도는 엄두를 못 낸다.

○관광지에 주차장 설치

조지워싱턴대 직원인 린제이 벨시 씨는 이 프로그램에 연간 회원으로 가입해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각각 3.2㎞를 자전거로 이동한다. 그는 “내가 이용하는 경로에서 자전거 전용도로가 확보된 총 거리는 겨우 1.6㎞에 불과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나마 같은 시간대에 같은 경로를 타는 회원들이 4~5명으로 불어나 주변 차량에 더 신경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용도로를 확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공부지에 자전거 주차장을 추가로 설치해 이용자들의 편의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이에 따라 워싱턴 시당국은 링컨 기념관, 거울못, 워싱턴 기념탑이 들어서 있는 대형 녹지공원 ‘내셔널몰(National Mall)’에 자전거 주차장 5개를 새로 설치하려 하고 있다.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이 실효를 거두자 워싱턴과 인접한 메릴랜드주의 락빌, 버지니아주의 알렉산드리아시도 이 프로그램에 속속 동참할 계획이다.



◆ 조시 모스코위츠 市교통과 매니저 “연회원 1년새 세 배 늘어…다른 주들도 벤치마킹”

“다른 주에서도 우리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려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

워싱턴DC 시정부 교통과에서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Capital Bikeshare Program)’을 담당하고 있는 조시 모스코위츠 매니저(사진). 그는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 매사추세츠주의 보스턴시 등이 우리 모델을 본 딴 자전거 함께 타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고 소개했다.

모스코위츠 매니저는 “시민과 방문객, 관광객들에게 환경친화적이고 교통 체증을 줄일 수 있는 교통수단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에서 이 프로그램을 출범시켰는데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일일 회원은 지난해 1월 1만2468명(누적 기준)에서 올해 1월 11만1587명으로 1년 새 약 10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연간 회원은 5399명에서 1만8896명으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그는 “자전거 구입비와 관리비, 주차장 설치비와 운영비, 전용도로 설치비 등으로 연간 400만달러의 예산이 투입되지만 예산 전액을 연방정부가 지원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덕분에 2010년 9월 이후부터 지난달까지 17개월 동안 15만달러 흑자가 났다”고 덧붙였다.

모스코위츠 매니저는 “미국은 자동차가 주류 교통수단이어서 도로가 자동차 위주로 설계됐다”며 “하지만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과 레저활동이 늘어나면서 도로를 자전거 이용자들과 함께 사용한다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인식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4년 동안 자동차와 자전거 간 교통사고 건수는 14건에 불과했다.

그는 자전거 전용도로 확보와 관련, “백악관과 연방의회를 연결하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 등 시내엔 총연장 80여㎞의 자전거 전용 포장도로와 외곽엔 160㎞의 자전거 전용 비포장 도로가 갖춰져 있으나 이를 계속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