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北 미사일 발사' 행간 읽기
핵안보정상회담이 지난 26~27일 서울에서 성공리에 열렸다. 하지만 회담 직전 북한은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긴장이 커지고 있다. 29일엔 로켓에 연료주입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위성 발사가 임박한 것으로 보도됐다. 북한은 이번 장거리로켓 발사를 실용위성 발사라고 우기면서 누구든 시비를 걸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신뢰라는 말조차 모르는 북한의 행동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어서 크게 놀랄 것은 아니어도 남한은 물론 국제사회는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려는 배경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미·대남 정책라인의 혼선, 또는 협상파와 군부와의 심한 갈등에 의해 비롯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권력세습을 마무리해야 하는 김정은으로서는 시간에 쫓기다 보니 단기적인 고강도 정책에 현혹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도 나왔다. 이런 분석에 대해 반론의 여지는 크게 없으나 우리 사회가 간과하고 있는 관점이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번 미사일 발사 소동이 단순히 북한 내부의 구조적 문제라기보다는 고도의 전략적 계산에 따른 대미·대남정책 우선순위 조절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한반도는 정치 지형 변화에서 새로운 분수령을 맞는다. 북한은 3대 권력세습을 넘어 강성대국 선포와 김씨 왕조의 지속적인 안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며 남한에서는 정치적 구조의 일대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해다.

그런 가운데 북한이 제일 중요하게 인식하고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남한의 총선과 대선이다. 남한에서 종북좌파세력이 진보세력과 연합해 보수정권을 무너뜨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나아가 남한의 정치 지형에 ‘친북세력’을 심을 수 있는 모처럼의 기회라고 북은 보는 듯하다. 이를 통해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전략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한은 미국과의 핵협상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체제안정 담보와 엄청난 보상을 받아내는 것을 중요한 외교적 목표로 정하고 연초부터 북·미 접촉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북·미 관계개선과 친북정권 창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방안을 노렸던 북한에 있어 미국과의 제3차 협상을 통해 대폭적인 양보와 선물을 얻어낸 것은 나름의 ‘쾌거’였다. 그러나 기쁨이 채 가시기 전에 남한으로부터 불안한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연초부터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던 종북좌파•야권 연합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2·29 북·미회담 직후 크게 떨어지더니 최근 들어선 반대로 뒤집어졌다.

이것은 친북정권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북한 지도부에 심각한 고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결국 북·미관계 개선목표를 전략적으로 뒤로 미루고서라도 종북좌파들의 국회 입성을 지원하기로 정책순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시험을 강행해 야권 연합세력의 선거 모티브인 ‘북한과의 평화적인 관계’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협력해야 할 나라’라는 인식을 남한 유권자들에게 심어줌으로써 보수정권을 ‘전쟁세력’ ‘위험한 북한을 자극하는 세력’으로 고사시키려는 고도의 선거지원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남한에서는 북에 대한 단호한 대응보다는 대북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정당에 표가 쏠리는 경우가 종종 벌어졌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평화냐, 전쟁이냐’는 구호가 먹히면서 야권이 승리했다. 북한은 이번 미사일 발사를 통해 2년 전 선거 때와 똑같은 결과를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미관계도 완전히 판을 깨자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2·29 합의 파기로 인해 북·미관계가 다소 껄끄러워져도 자기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상, 이번 총선에서 목적을 달성한 다음 충분히 복원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올 4월까지 북한이 치러야 할 여러 정치적 일정의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도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김흥광 < NK지식인연대 대표 romeo4188@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