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성장친화형 복지가 답이다
2011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3000달러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전체 임금근로자 1700만명 중 580만명이 비정규직 근로자이고 임시직 일용직을 합하면 전체 근로자의 절반인 860만명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다고 한다. 자영업자 560만명 중 월 수입 100만원이 안 되는 사람도 300만명 정도 된다는 조사가 나오고 있다. 전체 취업자 2400만명 중 절반 정도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1971~1997년 중 평균 8.9%를 지속해 오던 성장률이 1998~2011년 중 평균 4.2%로 떨어진 것이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악영향을 줬다. 낮아진 성장률이 15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를 양산한 것이다. 투자증가율은 더 심각하다. 1971~1997년 중 평균 12.3%로 투자가 성장을 이끌어 왔으나 1998~2011년 중에는 평균 1.7%로 뚝 떨어져 성장을 뒤따라가고 있다. 이 정도면 노후시설 대체투자 정도만 일어나고 신규투자는 거의 없는 실정이라 할 만하다. 이렇게 가서는 선진국 진입은 고사하고 일자리 불안으로 큰 사회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여기까지는 통계가 보여주는 팩트다. 그러나 처방에 대해서는 완전히 정반대다. 좌파 쪽에서는 대기업과 부유층이 세금을 더 내서 중소기업과 빈곤층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재분배에 역점을 둔 복지다. 반면 우파 쪽에서는 투자여건을 개선, 투자를 더하게 해서 일자리 만드는 것이 최선의 복지라고 주장한다. 양대 선거를 앞두고 야당의 복지공세에 여당도 수세에 몰리지 않으려고 복지공약 대열에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성장 얘기는 없고 복지포퓰리즘뿐이다. 복지만 하면 취업자 절반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다산 칼럼] 성장친화형 복지가 답이다
복지 선진국이라고 하는 영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제국은 1960~1970년대에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완벽한 복지를 누렸다. 그러나 높은 세금 등 큰 부담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복지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증가를 초래했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 세계화 열풍은 세금과 임금이 낮은 곳으로 기업이전을 가능케 함으로써 더 이상 높은 법인세를 매기는 일도 어렵게 됐다. 하는 수 없이 복지 선진국들은 1980년대 후반부터 복지제도 개혁을 시작, 1990년대에 대부분 개혁을 완성했다.

개혁의 요체는 일하는 자가 수혜를 받는 근로촉진적 복지제도와 투자촉진을 위한 기업친화적 조세제도다. 근로촉진적 복지제도는 실업수당 지급 중심의 소극적 노동정책을 지양하고 실업수당 수혜조건을 구직활동, 직업훈련과 연계시키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기업친화적 조세제도는 법인세는 낮추고 소득세는 국민개세주의를 지향, 세원도 넓히고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했다. 종래의 소득재분배 중심의 고부담 고복지 저성장 구조에서 벗어나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성장친화형 복지제도를 구축했다. 그 결과 재정흑자를 이루고 국가부채를 낮출 수 있었다.

이처럼 이미 복지 선진국들이 성장친화형 복지제도로 전환하고 있던 1980년대에 남유럽국가들은 뒤늦게 고부담 고복지 제도를 도입했다. 이들 국가는 1990년대에 국가부채 증가 등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개혁에 저항하는 국민들과 집권에만 눈이 어두운 정치권의 야합으로 개혁을 못하고 마침내 위기를 가져왔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양극화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선진국으로 도약할 것인가, 남유럽이나 남미 같은 혼란으로 추락할 것인가의 기로에 서 있는 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명확하다. 그 방향은 성장이냐 복지냐의 이분법을 넘어서 성장친화형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오정근 < 고려대 교수·경제학, 국제금융학회장 ojunggun@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