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열풍’을 타고 시작된 트레킹(trekking·도보 여행) 바람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트레킹에 빠져들게 하는 매력은 자연에 몸을 맡기고 몸과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트레킹 인구가 늘면서 오랫동안 보석처럼 감춰져왔던 각 지역의 산길들이 친환경 트레킹 코스로 속속 새단장하고 있다. 자연의 속삭임을 느낄 수 있는 ‘명품 트레킹 코스’로 꼽히는 강원 강릉 바우길, 전북 고창 질마재길, 충남 서산 아라메길을 소개한다.

[Leisure&] 봄 알리는 흙내음…귓가에 철썩~파도소리…'명품 트레킹' 떠나볼까

○바닷소리 속 흙내음 ‘강원 감자바우길’

바우길은 강원도 사투리로 바위를 뜻하는 ‘바우’에서 유래됐다. 강원도 사람들을 친근하게 부를 때 쓰는 ‘감자바우’에서 따온 말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한 번만 어루만져도 죽을 병을 낫게 한다는 바벨로니아 신화 속 ‘건강의 여신’의 이름도 바우다. 걸으면 저절로 건강해질 것 같은 재밌는 이름이다.

백두대간의 중간인 대관령에서 출발해 경포대와 정동진을 잇는 코스로 총 11개 구간, 155㎞ 코스다. 구간마다 적게는 4시간, 많게는 8시간이 걸리며 80% 이상이 비포장 숲길이다. 산과 바다, 숲길이 번갈아 열리면서 시원한 바닷소리와 따스한 흙내음을 함께 마실 수 있다. 첫 구간인 선자령 풍차길은 야트막한 대관령 평탄 고원에 펼쳐진 양떼 목장 울타리를 지나 산 위의 흰 바람개비(풍력발전단지)를 따라 백두대간의 등길을 밟는 길이다. 오르막길이 많지 않아 누구나 무리없이 즐길 수 있다.

다만 이 코스는 바다에서 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강원도의 바닷바람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평지와 산 정상 간의 온도차가 꽤 벌어지기 때문에 돌발적인 기상 상황에서 체온이 떨어지지 않는 복장과 소지품을 갖추는 것이 좋다.

○서정주의 발자취 ‘전북 질마재길’

질마재길은 미당 서정주 시인이 유년 시절 걷던 길로 알려져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부터 미당의 생가와 질마재, 인천강 등을 거쳐 서해안을 끼고 선운사까지 총 40㎞에 이르는 ‘고인돌 질마재 따라 100리길’ 4개 코스 중 세 번째 코스가 질마재길이다. 14.7㎞로 총 5시간가량이 소요되며, 시작과 도착점이 같은 순환형 코스다.

연기마을에 들어서면 이정목이 보이고 여기서부터 나무계단이 설치된 동릉으로 오른다. 소요산과 구암리 병바위가 보이는 전망대에서 한숨을 고른 다음 전망바위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는 것도 좋다. 고창의 젖줄인 인천강을 사이에 두고 높이가 같은 선운산 경수봉과 마주보고 있어 ‘형제봉’이라 불리는 소요산은 걸출한 문장가를 많이 배출해 ‘문필봉’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연기재에서 소요사까지는 콘크리트 길이지만 1㎞가량이 S자형으로 꼬불꼬불하게 휘어 있어 산길보다 오히려 더 힘이 들 수도 있다. 큰 절벽을 끼고 돌아 소요사 입구를 지나면 범종각 마루 위에서 잠시 땀을 식힐 수 있다. 소요사 왼편으로 난 산행로는 각도가 상당한 경사면이어서 힘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자연의 기 충만 ‘서산 아라메길’

아라메길은 바다를 뜻하는 ‘아라’와 산을 뜻하는 ‘메’에서 이름을 따왔다. 바다와 산을 따라 시작점과 끝점이 따로 없어 그저 발길이 닿는 곳으로 걸으며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현재 1코스만이 개통됐으며 2015년까지 총 길이가 239㎞에 달하는 17개 구간이 조성될 예정이다.

1코스는 걷는 데 6시간가량 소요되며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유기방 가옥에서부터 선정묘, 용현계곡, 서산마애여래삼존상 등의 문화유적을 볼 수 있고 계곡과 산, 바다 등을 모두 거치게 된다. 일락산 아래 사잇고개에서 한 시간쯤 걸으면 가야산 석문봉(해발 678m)까지 다녀올 수 있다. 가야산은 예산, 서산, 당진 등 3개 군에 걸쳐 들판에 우뚝 솟아 당당한 산세를 자랑한다. 가야산의 정상인 가사봉은 출입금지구역인 탓에 대신 북쪽으로 2㎞ 거리인 석문봉을 오르내리는 코스가 인기다.

아라메길을 알리는 리본을 따라 걸으면 그윽한 솔숲이 나타나고 완만한 능선 길을 20분쯤 오르면 일락산에 닿게 된다. 숨 한번 돌리고 내려오면서는 사잇고개를 따라 가야산의 진면목으로 꼽히는 석문봉에 들르는 것이 좋다. 이곳에서의 조망은 호쾌한 장수를 연상케 할 정도로 장엄한 매력을 풍긴다. 석문봉에서 옥양봉으로 가는 능선은 바위가 많은 옥양봉으로 이어진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