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트레이드'가 돌아왔다
올 들어 엔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한동안 잊혀졌던 ‘엔캐리 트레이드’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이자가 싼 엔화를 빌려 고금리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분위기는 무르익었다. 엔화는 약세로 돌아섰고, 브라질 멕시코 등 신흥국과 일본 간 금리 차는 여전히 크다. 경쟁 통화인 미국 달러화는 자국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선 탓에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이 반감됐다. 유로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1990년대처럼 엔캐리 트레이드가 본격적으로 살아나긴 어렵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 경기에 다시 침체 시그널이 나타나면 엔화가 곧바로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엔캐리 트레이드 부활 조짐

월스트리트저널은 21일 “엔화 절상을 막으려는 일본 정부의 노력이 먹혀들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시장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엔캐리 트레이드가 성립하려면 크게 세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하나는 엔화 약세. 그것도 추세적으로 엔화 가치가 떨어져야 위험부담이 작아진다. 외국에 투자한 자산을 파는 시점에 엔화가 강세를 보이면 환차손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올 들어서는 일단 이런 리스크가 줄었다. 멕시코 페소화 대비 엔화 가치는 20%가량 떨어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와 브라질 헤알화에 대해서는 각각 16%와 11% 하락했다. 당분간 엔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 선물시장에선 엔화 절상보다 절하에 베팅한 자금이 60억달러 이상 더 많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자산운용 회장은 “캐리 트레이드 측면에서 엔화가 가장 매력적인 통화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금리 차.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여전히 ‘제로 금리’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대출금리의 기준이 되는 정책금리는 연 0~0.1%에 불과하다. 반면 주요 투자처인 브라질은 이달 들어 헤알화의 지나친 강세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했음에도 기준금리가 여전히 연 9.75%로 높은 수준이다. 인도와 멕시코의 기준금리도 각각 연 8.5%와 연 4.5%로 일본을 한참 웃돈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살아나면서 이들 국가의 금리가 오름세를 보이고 있는 것도 엔캐리 트레이드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달러화와 유로화를 기반으로 캐리 트레이드를 하기엔 투자국과의 금리 차가 너무 작아진 것이다.

◆“시장은 한순간에 바뀔 수 있다”

엔캐리 트레이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뒤 거의 자취를 감춰버렸다. 미국과 유럽 중앙은행이 경기를 살리기 위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낮추면서 엔화 대신 달러화와 유로화가 캐리 트레이드용 통화로 각광받았기 때문이다. 작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이 터진 뒤 반짝 엔캐리 트레이드가 살아나긴 했지만 곧바로 엔화 가치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없던 일이 됐다.

최근 불고 있는 엔캐리 트레이드 부활 조짐도 장기간 이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도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경기가 안정 궤도에 올랐다고 보기에는 아직 무리라는 분석이다. 외환거래회사인 FX콘셉츠의 존 테일러 회장은 “미국 중앙은행(Fed)이 추가 양적완화를 실시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며 “미국과 유럽이 경기침체 기미를 보일 경우 엔화는 다시 강세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 캐리 트레이드

금리가 낮은 국가에서 돈을 빌려 수익률이 높은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금융거래 기법이다. 양국 금리 차만큼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 투자한 나라의 통화가 강세를 보이면 추가적인 환차익도 얻는다. 조달 통화의 명칭이 접두어처럼 따라붙는다. 달러를 빌려 투자하면 달러캐리 트레이드, 엔화를 사용하면 엔캐리 트레이드라고 한다. 오랜 기간 초저금리를 유지해온 일본 엔화가 주로 캐리 트레이드에 활용됐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