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의 애플 '궤도 수정'…성장·주주가치 모두 챙긴다
애플이 19일(현지시간) 자사주 매입과 배당을 통해 450억달러에 이르는 현금을 투자자들에게 풀기로 한 것은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지난해 사망한 이후 보여준 가장 큰 경영전략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내부적으로는 안정적인 성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주변 이해관계자들인 주주들까지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완전히 선회한 것이다.

이런 전략의 변화는 팀 쿡 경영체제로 회사 지배구조가 바뀌면서 가능해졌다. 생전 잡스는 자사주 매입과 배당 등은 자본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경영이라기보다 투자자들에게 ‘뇌물’을 주는 경영행위라며 반대해 왔다. 투자자를 배려하지 않는 잡스식 성장 위주의 현금 확보 전략에는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긴 했다.

팀 쿡의 애플 '궤도 수정'…성장·주주가치 모두 챙긴다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난 잡스가 1995년 경영권을 되찾았을 당시 애플이 보유한 현금은 4억9100만달러에 불과했다. 주가는 주당 5달러 아래로 곤두박질쳐 있었다. 잡스는 경쟁자이던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로부터 1억5000만달러를 투자받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잡스의 아픈 기억은 애플이 현금성(현금+장단기 현금성 자산) 자산을 지난해 말 현재 976억달러로 쌓토록 한 편집광적 현금 확보 전략을 낳았다.

팀 쿡은 이런 전략을 수정했다. 그는 이날 “지금까지 애플은 연구개발과 부품 구입, 성장 인프라 마련 등에 사용해 왔지만 이제는 전략적인 투자에 대비한 현금과 회사 운영자금은 충분히 보유하고 있다”며 자사주 매입과 배당 계획을 발표했다. 안정적인 성장기반이 마련된 만큼 흘러넘치는 현금으로 주주들을 만족시키면서 앞으로도 계속 현금을 창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깔린 발언이다. 애플의 최고재무책임자(CFO)인 피터 오펜하이머도 “애플의 미래와 수많은 투자 기회에 강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잡스의 카리스마가 사라지면서 팀 쿡 체제가 주주들의 끈질긴 자사주 매입과 배당 요구에 맞서기 힘들었던 측면도 이번 배당 결정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스턴 에이지 앤드 리치의 쇼 우 애널리스트는 “그동안 주주들이 요구해왔던 자사주 매입과 배당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창출된 현금으로 주주들을 외면한 채 경영진과 직원들의 보상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비난에 시달려왔다. 결국 주주들의 요구에 굴복해 자사주 매입과 배당에 나섰던 마이크로소프트 등 정보기술(IT) 업체들의 전철을 애플도 밟게 됐다는 지적이다.

물론 팀 쿡 체제가 끊임없는 혁신으로 현금을 지속적으로 창출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그가 경영을 맡은 후 첫 작품으로 시장에 내놓은 아이폰4S 모델과 뉴아이패드의 혁신성은 잡스가 경영할 때보다 떨어진다는 지적이 없지 않다. 애플은 잡스가 쫓겨난 뒤 1995년까지 배당을 하다가 사세가 기울어진 경험이 있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