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원자력 안전의 두 가지 키워드
지난달 9일 고리원전 1호기에서 발생한 블랙아웃(전력공급 중단) 사고로 인해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재검토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비록 예방정비기간 점검과정 중의 실수로 시작된 것이고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원자력 안전에 대한 더욱 치밀한 보완이 수행돼야 함을 재차 인식하게 됐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사건은 계전기 시험 중 작업자의 실수로 발생한 것이다. 단순 실수로 끝날 수도 있는 일에 겹쳐서 비상 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음으로써 백색 비상 상황(원자력발전소의 비상사태는 단계별로 백색비상, 청색비상, 적색비상으로 나뉜다)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정상 운전 중인 상태는 아니었고 원자로 가동은 정지된 상태였으나, 완벽을 담보해야 하는 기술적인 안전대책의 일부가 무너진 것임에는 분명하다. 여기에 상당 기간 사건을 은폐하려 시도했다는 것은 이 사고를 ‘인재(人災)’라 불러 마땅하다 할 것이다.

지난해 3월11일 진도 9.0 규모의 지진과 14m 이상의 쓰나미로 시작된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초기에는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에 의한 불가항력적인 사고였다고 생각했으나, 최근 여러 가지 분석을 통해, 사고를 방지하거나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요인들을 간과하거나 무시함으로써 대비책 마련에 실패했던 점들을 발견했다. 쓰나미에 대한 기술적인 대비가 부족했던 점들뿐 아니라 위기관리 및 운영 체계의 문제점들도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원자력의 안전성 대책은 이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해야 한다. 먼저 이미 중요시하고 있는 하드웨어적인 기술 향상 방향이다. 이는 원자력과 관련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요소를 사전에 기술적으로 완벽에 가깝도록 검토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3중 4중으로 채택해 반영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핵연료가 녹아버리는 최악의 중대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이 예측 불가능한 천재지변으로 모든 외부 전원과 비상 전원이 차단되고 일정 시간 내에 복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방사성 물질의 외부누출 차단 기능에 문제가 없도록 기술적으로 대처하는 것도 포함한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완벽한 안전조치를 취한다는 원칙 아래 가능한 모든 대책을 수립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준비된 4중, 5중의 중복 안전장치에 모두 문제가 생겼을 경우의 대비책이 필요하므로 궁극적으로 완전 피동형 원전이 돼야 한다. 기술적으로는 어떤 중대사고의 경우에도 원전 외부로 방사능 물질이 다량 유출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하드웨어가 기술적으로 완벽하더라도 운영하는 사람과 관리 체계에 대한 소프트웨어가 잘 갖춰지지 않으면 안 된다. 평소에는 무시할 만한 사소한 문제들이 중첩될 때 엄청나게 큰 사고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고리원전 1호기의 경우에도 비상디젤발전기의 고장과 작업자의 조작 실수가 겹쳐 사고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현장의 작업자는 전체 시스템을 파악하지 못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하며, 큰 사고 없이 잘 운영되고 있을 경우에는 안전에 대해 과신하는 경향이 생길 수 있다. 이런 가능성까지 정밀하게 분석하고 매뉴얼에 반영해 대비책을 확보해야 한다. 규제 체계, 지휘 계통이나 운영 조직, 작업자는 이 매뉴얼을 반드시 지키도록 하는 안전문화의 생활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아무리 첨단 기술이라 하더라도 실패해 재난을 일으킬 수 있는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운영상의 오류로 인한 사고 가능성도 항상 존재한다. 이렇게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세심하게 찾아내 대비함으로써 원전 안전도는 높아질 수 있다. 안전하다고 방심하는 것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재난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최선의 기술을 개발해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매뉴얼을 보완하고 안전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신뢰를 회복해 가야 한다.

김용균 < 한양대 교수·원자력공학 / 객원논설위원 ykkim4@hanyang.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