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가 대지진 충격에서 깨어나고 있다는 관측이 잇따른다. 아직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징후들은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당장의 주가만 해도 도요타, 혼다 같은 자동차 회사는 올 들어 10% 넘게 올랐고 소니, 파나소닉 등 IT업체와 신일본제철 등도 강세다. 실적부진에다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등의 기세에 눌려 있기만 했던 지금까지의 모습이 아니다.

엔화 가치의 하락, 즉 엔저가 지금 일본경제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1월에는 달러당 76엔 수준까지 하락해 사상최저치(75.82엔)에 근접했지만 지금은 83엔 수준으로 연초에 비하면 8% 이상 올랐다. 원화환율이 달러에 비해 같은 기간 2.6% 하락한 것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이에 따라 엔화 가치는 원화 대비 11% 이상 떨어졌다. 엔고에서 엔저로의 극적인 변화다. 일부 전문가들은 2007년 7월부터 이어져왔던 엔고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을 정도다. 일본기업들은 당연히 환호성을 올린다. 일본경제신문이 지난 15일 “일본 기업들을 괴롭히던 엔고 현상이 누그러지면서 한국에 밀렸던 자동차와 반도체 등 일본기업들의 경쟁력이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보도한 그대로다..

일본이 지난해 대지진 이후 팔짱만 끼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대지진으로 파괴됐던 서플라이체인(공급사슬)을 포함한 재해복구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피해가 가장 컸던 동북부 7개현의 91개 생산기지 가운데 93%가 복구됐고 이 중 80%는 재해 이전의 생산 수준 이상을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양적완화 규모를 10조엔이나 늘린 데 이어 일본 중앙은행이 고질적인 디플레를 탈피하겠다며 1% 이상의 물가상승 목표를 제시하고 있는 것도 효과를 보고 있다.

일본은 산업 포트폴리오가 우리와 비슷해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경합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엔고시대가 끝나간다는 것은 일본 기업들이 다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한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원화 가치는 연말까지 더 올라 국내 수출기업들은 환율효과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작은 성공에 도취해 거만을 떨 때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