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동 오크우드호텔에 비스트로서울이라는 한식당이 있다. 일반 한식당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현대적인 실내디자인에 다소 어두운 분위기의 바(BAR)가 있고 한국 전통 소반이 한쪽에 진열돼 있다. 삼성동에는 비스트로서울을 비롯해 스칼렛 시추안하우스, 그리고 붓처스컷(4월 개업 예정)에 이르기까지 미드플래닝이 인테리어작업을 한 레스토랑이 6곳이나 된다. 삼성에버랜드의 일부 공간도 이 회사가 인테리어작업을 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와 자카르타에도 진출했다. 레스토랑 인테리어라는 특화된 분야에서 위치를 굳혀가고 있는 이 회사의 비결은 무엇일까.
"능력 넘는 인테리어 발주는 사양"…'거북이 경영'이 성장 발판
작년 말 서울에 빌딩을 갖고 있는 사업가 K씨가 서울 장충동 경동교회 옆에 있는 미드플래닝을 찾았다. 자기 건물에 세들어 있는 임차인들을 내보내고 자체적으로 레스토랑을 하려고 하니 이에 걸맞은 인테리어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인근의 몇 군데 고급 레스토랑을 가 보니 우아하면서도 품격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해당 실내장식업체를 찾던 끝에 미드플래닝를 알아냈고 인테리어를 의뢰한 것이다.

미드플래닝의 전문가 팀이 해당 빌딩을 방문해 정밀 분석을 했다. 구조와 넓이, 그리고 인근 상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끝에 그 사업가에게 정중하게 답했다.

“미안합니다만 그 건물에선 레스토랑을 하지 않는게 좋겠습니다.”

K씨는 깜짝 놀랐다. 아니 자신이 의뢰한 대로 인테리어를 해주면 매출을 올리고 이익도 챙길 수 있는데 왜 하지 말라는 것인가. 하지만 미드플래닝 팀의 의견은 달랐다. K씨가 요구한 것은 2층과 3층의 경우 고품격 식당이었고 1층은 돼지갈비집이었다. 돼지갈비를 굽게 되면 2층과 3층의 고급 레스토랑마저 분위기가 엉망이 된다는 게 미드플래닝 팀의 의견이었다. 한마디로 통일된 컨셉트가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지역은 이미 고급 레스토랑이 여러 곳 있어서 성공하기 힘들다고 판단해 정중하게 레스토랑을 하지 말라고 권유한 것이다.

인테리어업체들은 발주자가 원하는 대로 인테리어를 해주면 끝이다. 가뜩이나 건설경기가 부진해 수주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 굴러들어온 복덩이를 넝쿨째 걷어찰 이유가 있을까. 레스토랑 사업의 성패는 해당 사업가의 몫일 뿐이다. 하지만 미드플래닝의 생각은 다르다.

이 회사 창업자인 윤원철 대표(65)는 “고객을 성공으로 이끄는 게 바로 우리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윤 대표는 “우리가 인테리어를 해준 업체가 성공해야 우리도 기쁘고 그 레스토랑이 2호점 3호점을 낼 때 지속적으로 파트너 관계가 유지된다”고 덧붙였다.

매출이 100억원 선인 이 회사는 그리 큰 업체는 아니다. 하지만 고급 레스토랑 인테리어 전문업체로서 이 분야의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우직하게 나아가고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건설경기 침체 등으로 실내건축업체들 가운데 문을 닫거나 어려움을 겪은 회사가 수없이 많다. 하지만 미드플래닝은 소리 없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윤 대표는 경기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LG전자 캐나다지사장과 본사 수출부장을 지내는 등 수출전선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원래 인테리어와는 무관했다. 하지만 지인의 권유로 우연히 인테리어사업에 관여한 뒤 약 20년간 이 업계에 몸담게 됐다. 때로는 남의 일을 도와주기도 하다가 1998년 미드플래닝을 창업했다. 그의 경영 특징은 크게 3가지다.

첫째, 내실을 강조한다. 구호와 형식을 극도로 싫어한다. 회사에 들어서면 그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난다. 사내에는 사훈이나 경영목표 액자가 없다. 목소리도 낮은 톤이다. 그는 시간 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성실하고 책임감있게 일하라’고 조용히 독려한다. 그는 “능력을 초과하는 발주건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거절하는 정직함과 욕심의 절제가 미드플래닝의 힘”이라고 강조한다.

둘째, 새로운 설계와 시공기술의 트렌드를 따라잡기 위해선 아낌없는 투자를 한다. 다양한 식음료공간에 맞는 최상의 컨셉트와 새로운 디자인을 서비스하기 위해 직원들을 수시로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로 보내 연수를 시킨다. 앞선 사례들을 연구하는 것은 물론 국내외 동향에도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는 데이터로 차곡차곡 구축된다. 윤 대표는 “창업 이후 14년 동안 쌓은 레스토랑의 데이터가 상당히 많다”며 “최근엔 그 자료를 분야별로 정리하고 쉽게 볼 수 있도록 라이브러리 구축작업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능력 넘는 인테리어 발주는 사양"…'거북이 경영'이 성장 발판
미드플래닝은 레스토랑 공간의 설계와 시공에 집중하며 전문화된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윤 대표는 “한 분야를 잘하면 이와 연관된 분야도 잘할 수 있다”며 “레스토랑 인테리어에서 쌓은 경험을 호텔 리조트 등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회사는 최근 골프장 클럽하우스 식당이나 호텔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의 설계에 참여해 달라는 의뢰를 줄지어 받고 있다.

셋째, 고객의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다. 미드플래닝의 고객 중에는 창업 때부터 지금까지 거래가 이어지고 있는 업체가 여럿 있다. 프로젝트 의뢰가 들어오면 초기 디자인 단계부터 성공을 위해 협력한다. 현장 여건을 조사해서 설계와 시공상의 장단점을 검토하고 그동안의 경험과 자료를 바탕으로 조언을 해서 적절한 설계를 제공한다.

윤 대표는 “수동적인 하도급 업체가 아니라 능동적인 파트너가 돼 함께 윈윈하기 위한 것”이라며 “이런 생각이 고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레스토랑 사업의 성공 가능성이 낮으면 계획을 처음부터 재검토하는 게 좋겠다고 정중하게 건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고객의 요구를 세 번이나 거절한 경우도 있다. 고객의 실패를 예방해 주는 것이 곧 신뢰를 구축하는 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능력 넘는 인테리어 발주는 사양"…'거북이 경영'이 성장 발판
윤 대표는 미드플래닝 창업 전에 관여했던 경험을 포함해 그동안 150여곳의 레스토랑 인테리어에 관여했다. 여기에는 이탈리아식 프랑스식 등 양식당, 중식당, 일식당, 한식당, 패밀리레스토랑, 호텔레스토랑, 햄버거하우스, 기업체 대학 병원을 비롯한 대형 구내식당 등이 들어있다. 약간의 사무실과 병원 웨딩홀 스파 등도 포함돼 있다. 최근에는 단체급식식당의 인테리어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삼성에버랜드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이 회사와 공고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동안의 업력에 비춰볼 때 이 회사의 성장은 거북이처럼 느린 편이다. 하지만 윤 대표는 “매출만이 회사의 전부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며 “고객과 협력사 및 미드플래닝 직원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해하는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동남아 등 해외에서 날개를 펼칠 채비를 하고 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