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IB, 원화강세 '베팅'…"연말 1040원까지"
유럽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요 투자은행(IB)들이 원화 강세(원·달러 환율 하락)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있어 관심이다. 한국 경제의 기초여건(펀더멘털)이 탄탄한 데다 외국인의 한국 주식·채권 순매수가 이어지고 있다는 게 원화 강세론의 배경이다.

26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영국계 HSBC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아시아 통화 중 원화가 가장 강세를 보일 것”이라며 원화를 아시아 ‘톱픽 통화(최선호 통화)’로 꼽았다. 연말 원·달러 환율 수준으로는 1070원을 제시했다.

골드만삭스와 JP모건은 현재 1125원대인 원·달러 환율이 연말에 1040원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원화가치가 7.6%가량 오를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외국인의 원화자산 투자 확대도 이와 무관치 않다. 외국인은 올 들어 국내 주식을 10조원가량 순매수했고 국내 채권시장에서도 3조2000억원가량을 순투자(순매수-만기 회수액)했다.

외국계 IB는 원화 강세론의 근거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3000억달러를 넘는 데다 최근 수년간 단기외채 비중이 낮아져 대외 불안에 대한 대응력이 다른 어떤 신흥국보다 높다는 점을 들었다. 북한 리스크와 총선·대선이 환율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평가했다. 이상원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외국계 IB의 원화 강세 전망은 최근 원화가 안정적인 통화가 됐다는 평가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LG경제연구원 등 국내 경제연구소들도 올해 환율이 ‘상고하저(上高下抵)’ 흐름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은 올해 평균 환율을 상반기 1080원, 하반기 1040원으로 봤고 LG는 상반기 1115원, 하반기 1085원을 예상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외국 자본도 계속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투기 성향이 짙은 외국인의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가 최근 줄고 있는 것도 원화가 기조적으로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을 뒷받침한다. 한국은행이 이날 발표한 ‘외국환은행의 외환거래 동향’을 보면 지난해 4분기 비거주자의 하루 평균 NDF 거래금액은 5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2%, 전분기 대비 18% 감소했다.

정복용 한은 외환분석팀 과장은 “NDF 거래는 환율 변동성이 커질 때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작년 4분기 이후 환율이 점진적으로 하향 안정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퍼지면서 NDF 거래가 줄고 있다”고 외환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환율 하락폭이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오석태 SC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유럽 재정위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적어도 상반기 중에는 환율 추가 하락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재철 씨티그룹 상무도 “유럽 문제의 불확실성이 원화가치 절상 속도를 제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SC은행과 씨티그룹은 올해 평균 환율 수준을 1100~1150원으로 비교적 높게 전망했다.

정부가 환율 하락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할지도 변수다. 권영선 노무라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외환당국이 수출 경쟁력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원화의 원만한 절상을 용인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