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출신 방송인 아내와 영화감독 전만배 씨
가정출산 생생한 경험 책으로 출간 ‘즐거운 출산, 이야기’
“언제나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야 부부”란 진리 담아


EBS TV '싱싱 영어 동요’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아만다 버러월쓰(Amanda Butterworth·36)는 서울에서 두 딸을 키우는 엄마다. 고향은 캐나다 밴쿠버다. 사춘기 소녀 때 동양사상에 빠져 들었다. 아빠의 영향이 컸다.

아빠는 어린 딸을 데리고 밴쿠버 차이나타운을 자주 찾았다. 3살 때 눈물을 흘려가면서 아빠와 함께 매운 중국음식을 입에 댔고 10살 전에 젓가락질도 능숙해졌다. 호기심에 차이나타운 점집에 들렀다가 운명 같은 얘기를 듣는다.

“동쪽으로 가라. 빨간 신발을 신는 남자를 만날 것이다”

그 남자를 만날 목적은 아니었지만 28살 되던 해인 2005년 그녀는 점쟁이의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중국 시안(西安)으로 떠났다. 별 유쾌한 추억 없이 그곳에서 2년간을 보내던 어느 날 꿨던 꿈이 그녀의 한국행을 재촉했다.
“산부인과 의사 생각마저 바꿔 놓은 가정 출산”
꿈에 나타난 도시는 사진에서 보던 것과 같은 너무나 생생한 서울이었다. 다음날 바로 서울에서 영어강사를 하고 있던 캐나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꿈 얘기와 함께 일자리를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곤 짐을 챙겼다. 그렇게 찾아 온 서울에서 진짜 ‘빨간 신발을 신은 남자’를 만날 줄이야...

2007년 늦가을 어느 모임에 참석한 그녀는 촉망받는 영화감독으로 평가받던 한국인 남자로부터 화장실 앞에서 구애를 받는다. 그 남자는 2002년 안성기 최지우 주연의 영화 ‘피아노 치는 대통령’으로 데뷔한 전만배 감독이다.

전 감독이 빨간 신발을 신고 있어서만은 아니었겠지만 국경도 없는 사랑, 띠동갑도 넘은 세대차와 언어장벽을 무시한 사랑이 활화산처럼 타올랐다. 이내 사랑의 열매가 그녀의 뱃속에 들어섰다.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못했는데 배는 불러 올랐다. 남편은 혼인신고부터 마치고 오랜 지인인 정환욱 삼성제일병원 산부인과 의사에게 아내의 정기검진을 부탁했다.

초음파로 보이는 콩알만 한 핏덩이가 점점 아기의 윤곽을 잡아갈 때 쯤 아내는 “병원에서 애를 안 낳겠다”고 남편에게 폭탄선언을 해버린다. 가뜩이나 골반이 좁아 출산과정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의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요지부동이었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아만다 버러월쓰는 두 딸을 모두 가정에서 출산했다. 출산방법으로 수중출산을 선택했고 출산에 대한 두려움 및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일종의 최면기법인 ‘히프노버딩(HypnoBirthing)을 수련하기도 했다.
“산부인과 의사 생각마저 바꿔 놓은 가정 출산”
병원분만 비율 99.7%인 사회에서 버러월쓰·전만배 부부는 가정출산을 하고도 건강하게 두 딸을 낳아 키우고 있다. 가정출산의 생생한 기록을 이번에 책으로 내기도 했다. 책제목은 ‘즐거운 출산, 이야기(304쪽 14,000원)‘이며 2월15일 출간됐다.

버러월쓰는 이 책에서 가정출산을 선택한 배경으로 밴쿠버에서 세 아이를 집에서 편안히 낳은 어떤 부부의 경험담을 꼽았다. “다른 포유동물도 새끼를 낳을 때는 안전하고 어두운 장소로 들어간다. 심지어 방해 받거나 겁먹으면 출산을 멈추기도 한다.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병원 침상에 누워 대낮처럼 환한 조명아래서 외과 시술을 받으면 산모와 태아 모두에게 굉장한 스트레스다”라는 얘기가 굉장히 솔깃했다고 한다.

수영복만 입은 채 아내의 수중출산을 도왔던 전만배 감독은 “사람의 몸은 어깨 밑으로 좌우가 넓기 때문에 태아가 산모 몸 밖으로 무리 없이 나올 수 있도록 조물주는 여자의 생식기를 l자 모양으로 만들어 주신 거”라며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가정 출산은 아내와 남편, 아가 사이의 믿음과 사랑을 한없이 확인하는 기회라고 두 사람은 입을 모은다. 이들 부부의 가정 출산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정환욱 의사는 히프노버딩 치료사 자격을 딴 후 자연출산센터 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버러월쓰가 산부인과 교수까지 역임한 의사 삶의 방향까지 바꿔 놓은 셈이다.


한경닷컴 김예랑 기자 yesr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