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복지다] '주어진 일자리'만 찾다 허송세월…청년창업 '도전의 길'도 있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창업하는 사람이 늘어난다. 1997년 말 터진 외환위기 이후가 그랬다. 굴지의 대기업들이 잇달아 무너지고 살아남은 기업들마저 구조조정 한파에 휩싸이자 젊은이들은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당시 벤처기업 붐은 취직길이 막힌 청년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하지만 그 이후 창업 열풍은 수그러들었다. 벤처붐이 꺼진 충격이 컸던 데다 정부의 정책이 기업가정신을 북돋우기보다는 규제 위주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청년 일자리의 활로를 찾으려면 창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수그러든 청년창업 열풍

[일자리가 복지다] '주어진 일자리'만 찾다 허송세월…청년창업 '도전의 길'도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신규 창업 기업 수는 벤처붐이 한창이던 2002년 61만2300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38만4500개로 37.2% 줄었다.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국내 기업들이 채용을 늘리면서 젊은이들이 ‘취업’하기가 쉬워졌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 필요성은 그만큼 줄었기 때문이다. 벤처붐이 꺼지면서 수많은 기업이 무너진 것도 젊은이들의 창업 마인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무원이나 대기업 등 안정적인 일자리에 대한 관심이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더 높아진 것도 한 요인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벤처기업에 뛰어드는 젊은 기업인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 등에 따르면 벤처기업 가운데 20대 젊은이가 최고경영자(CEO)로 활동하는 기업 비율은 2001년 6.0%에서 2011년 1.1%로 낮아졌다. 30대 CEO 비율도 이 기간 50.2%에서 18.4%로 축소됐다.

젊은 CEO들이 줄어든 것은 기업인으로서 성공해보겠다는 도전정신이 위축된 탓이다. 한국은행이 조사해 발표한 기업가정신 지수는 2000년 53에서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7년 18로 급락했다. 이후 발표한 데이터가 없어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기업가정신이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 한국은행을 포함한 연구기관 관계자들의 공통된 얘기다.

◆창업 되살리기에 나선 정부

[일자리가 복지다] '주어진 일자리'만 찾다 허송세월…청년창업 '도전의 길'도 있다
‘내 직장은 내가 만든다’는 창업은 취업과 함께 우리 사회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두 축이다. 창업의 문이 좁아지면 청년 취업난은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수그러든 창업 열풍을 되살리기 위해 예산을 지원하는 등 각종 정책을 동원하는 것도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다. 2008년 이후 정부는 8차례나 창업대책을 내놓았다.

올해 내놓은 대책은 16조2965억원을 창업에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전년 대비 9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2000년대 초 불었던 벤처붐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정부출연연구원 출신을 대상으로 ‘연구원 예비창업자 육성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실리콘밸리 진출 기업 지원금을 종전 35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늘렸다. 또 청년 전용 창업자금을 신설해 1600억원을 공급하고 창업 실패 기업의 채무를 조정하는 지원금으로 500억원을 책정했다. 창업 컨설팅 및 원스톱 창업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청년창업센터를 13개 중소기업진흥공단 지역본부에 운영하기로 했다.

서승원 중소기업청 벤처창업국장은 “올해는 민·관이 공동으로 창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지원에 나설 것”이라며 “정부의 창업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해달라”고 주문했다.

◆외부 지원보다 기업가정신 중요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지원 대책이 젊은이들의 창업 마인드를 되살릴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이미 창업에 성공한 기업인들은 정부의 자금 지원 등을 포함한 외부 도움만으로는 창업을 활성화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기업가정신을 일깨우고 시장 중심의 마인드를 갖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유미팩’으로 성공신화를 쓰고 있는 유현오 제닉 대표(41)는 “창업을 하려면 도덕성이 뒷받침된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돈 욕심을 부리면 잘해야 반쪽짜리 성공에 그치고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충고했다.

4세대 롱텀에볼루션(LTE) 네트워크장비 관련 업체인 다산네트웍스 남민우 대표(51)는 ‘시장 중심의 사고’를 강조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보다 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 대표는 “처음부터 연구·개발(R&D) 마케팅 영업 관리 등을 모두 하려고 하면 자신에게 부담이 돼 사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기 힘들다”며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디지털비디오레코더(DVR) 업계 글로벌 플레이어로 평가받는 아이디스의 김영달 대표(45)는 시장성과 함께 차별화를 창업 성공 조건으로 꼽았다. 그는 “남들과 같은 출발선상에서 시작하면 사업을 키워나가기가 힘들다”며 “작은 것이라도 업계의 패러다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차별화 포인트를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