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로드숍 패션’의 쌍두마차로 꼽히는 세정과 패션그룹 형지가 ‘올리비아’ 상표권을 놓고 또다시 맞붙었다. ‘올리비아 하슬러’를 운영하는 형지가 2008년 ‘올리비아 로렌’을 거느린 세정을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소송에서 패소하자 이번에는 반대로 세정이 소송을 낸 것이다. 업계에서는 박순호 세정 회장(66)과 최병오 형지 회장(59)이 같은 부산 출신에 ‘자수성가한 패션인’이란 공통점을 가졌다는 점에서 둘 사이의 소송전을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세정은 “지난해 형지가 올리비아 하슬러 매장을 리뉴얼하면서 간판 색상을 올리비아 로렌과 비슷한 보라색으로 바꾼 탓에 소비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며 “형지가 간판을 바꿔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아 부득이하게 소송을 하게 됐다”고 20일 밝혔다. 세정은 작년 8월께 소송을 제기했으며 최근까지도 간판을 교체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형지 측에 건넸다고 설명했다.

세정은 인디안, NII 등을 통해 지난해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패션 전문기업으로, 30~50대 여성을 겨냥해 2005년 8월 올리비아 로렌을 선보였다. 크로커다일 레이디, 샤트렌 등을 거느린 연매출 7000억원 규모의 형지는 이에 맞서 2007년 8월 올리비아 하슬러를 내놓았다. 이 제품도 타깃 고객층은 30~50대 여성이다.

하지만 여성복으로 먼저 상표 등록을 한 건 형지였다. 올리비아 로렌보다 8개월 빠른 2006년 10월 올리비아 하슬러 상표를 등록한 것. 형지는 이를 근거로 2008년 세정을 상대로 상표권 무효 소송을 제기했지만 “서로 다른 별개 브랜드”란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세정이 “간판이 비슷하다”며 반격에 나선 것이다.

형지 관계자는 “소비자 설문조사 결과 보라색을 선호하는 고객이 많아 간판 색상을 바꾼 것”이라며 “브랜드 명이 다른데 간판 색상이 같다고 소비자들이 오인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1심 판결은 3~4월 중 나올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여성복 로드숍 시장의 최강자 자리를 놓고 겨루는 ‘라이벌’ 의식이 반영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